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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규선 Sep 13. 2021

양평 목왕리에서


"여기는 아직도 벚꽃이 피어 있으니 빨리 놀러 와라"


서울 영등포에 살다가 아픈 아내의 건강을 위해 올초 양평 목왕리로 이사 간 A의 전화를 받고, 오늘 친구들과 양평 두물머리 생태학습공원을 산책한 후에 그의 집을 방문했다.


작년 초겨울에 걸었던 두물머리공원은 황량할 정도로 넓은 초원과 누런 억새밭이 떠오른 갈색추억이었다면, 지금은 어느새 화사한 봄이 되어 푸릇푸릇 물이 올라가는 곳마다 연두색 수채화를 그렸다.


나는 작년과 반대로 사람이 드물어 산보하기 좋은 갈대 쉼터 길을 시작으로 들판을 지나 공원의 끝인 두물경으로 안내했고, 또 유명 포토존인 대형 액자에서는 단체사진을 찍으며 50년 우정을 기념했다.


"당신의 건강은 안녕하십니까?"라고 비만도를 체크할 수 있는 통나무 틀에서 2명은 날씬(20cm), 1명은 표준(23cm) 그리고 양평에 사는 A는 통통(25cm)을 통과하여 우리 친구 중에 뚱보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우리는 양수역 인근에 있는, 사방이 유리창으로 되어 쾌적해 보이는 식당에서 점심을 한 후에 A가 살고 있는 목왕리로 향했다.


그곳은 확실히 서울과 온도차가 있어 아직도 벚꽃이 피어있었고, 올해 마지막 꽃구경이라 생각해 창문을 열고 천천히 드라이브하니 바람에 수많은 꽃잎이 눈처럼 펄펄 내려 황홀했다.


10여분 만에 도착한 집은 지난주 양평 원덕역 인근에 있는, 요새 같은 넓은 전원주택은 아니었지만, 영화나 드라마에서 자주 나오는 아담하고, 세련되어 마치 카페 분위기였다.


거실에서 통 큰 유리창으로 잔디밭과 벚꽃이 만발한 산을 바라보는 멋이 있지만, 바깥으로 나와 난간에서 계곡을 내려다보며 졸졸졸 흐르는 시냇물 소리를 듣는 기분은 서울에서 느낄 수 없는, 그곳만의 자랑이었다.


더구나 따스한 봄볕 아래 파고라 테이블에 둘러앉아, 바리스타를 교육시킬 정도로 자타공인인 커피 마니아인 A가 손수 끓여준 부드러운 커피를 마시며 담소하니 행복이 시나브로 내 안으로 들어왔다.


년 전에 우연히 A가 준비한 부드러운 커피를 마신 후에 그의 숨은 재주를 알았는데, 오늘 커다란 장식장에 가득 찬 커피재료와 수십 종의 다양한 커피머신을 보고 놀라, 이것은 취미를 넘어 특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우리의 입, 아니 나의 입을 벌리게 한 것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오래전에 경기도 파주에 있는 1사단 교육대에서 신임장교 환영식을 할 때였다.


군악대원 중에 한 병사가 나와서 군가를 부르는데, 어디선가 많이 듣던 특이한 목소리여서 작은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니 A였다.


나는 그가 군대 갔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말년 병장이 되어 그곳에서 우연히 만나게 될 줄을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는 싱어 겸 클라리넷 연주자였고, 고교시절 밴드부에서 활동해 한때 음대에 가려고 각종 악기를 자유자재로 다뤘던 재주꾼이었다.


이를 증명하듯이 그의 집에는 기타, 드럼, 전자올겐에 비싼 진공 앰프 그리고 최고급 스피커까지 구비하여 거실에는 학창 시절 자주 다녔던 르네상스 음악실 분위기였고, 대형 스마트빔 프로젝터가 있어 커튼을 치니 갑자기 영화관이 되었다.


30년 전에 부동산중개사 자격증을 따서 회사 건물을 구입했을 때 핵심 역할을 했다는 그는 마당에 바비큐 기구가 3대나 있는 캠핑 전문 요리사였으며, 낚시에도 일가견이 있어 나는 그동안 뭐하고 지냈나 생각하니 살짝 얼굴이 후끈거렸다.


조용한 성격인 그가 이런 재능이 있다는 것을 내가 미처 깨닫지 못했지만, 그동안 답답한 아파트 생활에서 벗어나 그곳은 그의 아내의 건강을 위해 맑은 공기를 마시고, 또 취미생활을 하는데 더할 나위 없는 장소라 생각했다.


항상 느끼지만, 행복은 자기 하기 나름이고, 그다지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오늘도 실감했다.


마당 한쪽에 심은 대파와 상추를 한 달 뒤에 수확한다며 또 놀러 오라는데, 그때는 야외에서 바비큐 파티를 하고, 실내에서는 그의 노래와 클라리넷 연주를 들으며 하우스콘서트를 해볼까!


글쓴이, 서치펌 싱크탱크 대표 이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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