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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규선 Sep 13. 2021

여주 공원에서


"창밖에는 비 오고요. 바람 불고요, 그대의 귀여운 얼굴이 날 보고 있네요."   중략


가수 송창식이 감미롭게 부른 "창밖에는 비 오고요"라는 노래다.


마냥 늦장을 부리고 싶은 토요일 아침, 더구나 비가 와서 더욱 운치 있는 한강을 내려다보며 송창식의 노래나 들으며  모닝커피 한잔 하면 좋을 분위기였다.


그렇지만, 나는 평소보다 더 일찍 일어나, 인터넷으로 경기도 여주지역의 날씨를 확인하니 "시간당 5mm 미만의 비가 내리는 곳이 있고, 특히 우박이 떨어지는 곳도 있으니, 비닐하우스나 약한 구조물 등 시설물 파손과 농작물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히 관리하기 바란다"라고 하였다.


오늘은 종친회 임원들과 여주에 있는 납골공원(여주 공원) 텃밭에 호박 모종을 심는 날이다.


5천 평 규모의 여주 공원은 마치 작은 대학 캠퍼스처럼 예쁘게 꾸며놓아, 나에게는 6년 전에 돌아가신 부친을 가끔 뵈러 가는 마음의 안식처였다.


또 주변의 넓은 밭은 오이, 가지, 고구마, 땅콩 등 각종 작물을 심어 가을에는 수확의 기쁨을 얻는 곳인데, 아직도 빈 곳이 많이 남아 그냥 놀리기 싫어 제안한 것이 호박심기였다.


오전 8시 30분에 성남 종친회 빌딩을 떠나 고속도로에 들어서니 주말이라 막혔고, 여주 공원 관리인에게 날씨를 물어보니 비가 오락가락한다고 하였다.


10시에 도착하여, 종친회에서 준비한 물건을 꺼내보니 그중에 국방색 장교 우비가 있어 반가웠지만 빨지 않아 지저분했다.


그래서 비닐도 뜯지 않은 판초우의를 입으니 팔이 불편해 벗었고, 그냥 등산복에 모자를 쓰고 로터리작업을 한 호박밭으로 갔다.


그런데 지대가 낮은 초입이라 그런지 장화가 쑥 빠졌고, 마치 늪처럼 한 발짝 움직이는 것도 힘들었다.


"아유!  이런 데서 어떻게 일할 수 있나!"


삽으로 몸을 겨우 지탱하며 몇 발자국 옮기니 걸을 수 있어, 종원들이 까만 비닐로 방금 덮어 씌운 밭 위에 나는 일정한 간격으로 구멍을 내어 호박 모종을 심었다.


TV에서 무수히 봤던 모종 심기를 난생처음 해보니 마치 농부가 된 것 같았고, 학창 시절 큰댁에서 모심기할 때처럼 거머리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었고, 또한 3년 전에 이곳에서 줄줄이 사탕처럼 나오는 고구마를 캘 때처럼 허리가 아프지 않았다.


약골인 내가 2주일 전에 당일코스로 지리산 천왕봉을 등정한 후에 자신감을 얻은 것일까!  아니면 이 정도는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아주 쉬운 일일까!


아무튼 나는 서툴렀지만, 삽과 괭이를 쓰는 법, 비료와 퇴비 그리고 제초제 사용처와 시기 등 하나 둘 배우는 즐거움도 있었다.


오후 1시쯤 일을 마친 후에 우리는 여주 공원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꽃과 나무 그리고 잔디부터 봄이라 재실 뒤편에 자란 각종 나물과 드룹까지 다양한 얘기를 나눴다.


관리사무소에 많은 손님이 오셨는데, 알고 보니 관리인의 가족뿐만 아니라 사돈 부부까지 놀러 오셨다고 하였다.


말하자면, 관리인에게는 이곳이 매일 상주하는 일터지만, 오늘은 별장이라 생각해 자랑하고 싶어 사돈댁까지 모신 것 같았다.


비가 많이 오면 어떡하나 1 주일 내내 걱정했지만 적당히 대지를 적셔주었고, 땀을 흘리며 가꾼 넓은 밭을 커피를 마시며 바라보니 흐뭇했다.


집에 돌아와 여주 공원 얘기를 하니, 아내는 연로한 관리인이 언젠가 그만 두면 우리가 그곳에 가는 것이 어떤지 나에게 넌지시 의향을 물었다.


도시인을 자처하는 나와 다르게, 전원생활을 동경하는 아내는 지금 그곳이 멋져 보이지만, 여름이면 벌레와 잡초, 겨울에는 추위와 외로움을 견뎌낼 수 있을까 심히 의심스럽다!


그럼 우선, 테스트 차원에서 전망 좋은 곳에 텐트를 치고, 내가 심은 호박이나 따먹고, 큰 나무 가지치기도 하며 2박 3일 야영을 한번 해볼까!


글쓴이, 서치펌 싱크탱크 대표 이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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