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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규선 Sep 13. 2021

아마추어 성악가들의 아름다운 향연


"나도 저 정도는 부를 수 있다고 생각하시죠?"


어제 강남에 있는 대형 홀에서 성악, 오페라 과정 졸업공연이 열렸는데, 처음에 아마추어 남녀 성악가들이 한국가곡 3곡을 연이어 부르자 사회자가 청중들에게 했던 코믹한 멘트였다.


그러면서 노래를 잘하는 분도 막상 무대에 올라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반주에 맞춰 부르기는 결코 쉽지 않다며, 누가 잘하는지, 얼마나 틀리는지 보지 말고 그냥 즐기라고 하였다.


이번 공연은 교수, 변호사, 사업가, 대기업 임원 등 나름 성공한 30분이 성악을 좋아해, 국내 정상급 교수들로부터 1년 동안 매주 한차례 모여 성악의 이론과 실기를 배워 공식적으로 대중 앞에서 발표하는 날이었다.


오프닝 축하공연은 싱어송라이터이자, 대학교수가 피아노를 치며 멋들어지게 노래하였고, 뒤이어 외국영화 파티장에서나 볼 수 있는 화려한 연주복을 입고 수료생들이 순서에 따라 한국가곡을 부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처음이라 긴장해서 그런지 음정이 불안해 제대로 실력 발휘를 못했고, 어떤 소프라노는 목소리까지 안 나와 앞에서 듣고 있는 나까지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다.


남녀 사회자가 번갈아 나와서 2~3곡이 끝날 때마다 이런 분위기를 슬기롭게 잘 처리하였고, 코로나로 해외여행이 힘든데 이번에는 유럽여행을 떠나자며 소개하니, 다른 수료생들이 프랑스, 이태리(돌아오라 소렌토로), 그리고 아일랜드(You raise me up) 노래를 그런대로 잘 불렀다.


남자 사회자는 오페라 해설가답게 노래에 담긴 내용을 미리 얘기하며 이해를 도왔고, 또 이태리 노래가 모음으로 시작되어 모음으로 끝나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다는 등 양념을 쳐가며 재미있게 진행했다.


1부 축하공연은 고전 배비장전을 현대감각에 맞게 풍자한, 한국 최초 창작 뮤지컬인 '살짝 옵서예'를 지도교수인 소프라노 가수가 춤추듯 노래해 박수를 받았다.


이어서 수료생들이 봄처녀, 얼굴, 내 마음의 강물 등 한국가곡을 불렀는데, 지도교수의 지휘를 보지 않아 박자를 놓치거나, 목소리에 맞지 않는 곡을 골랐지만 앞서 1부 공연보다는 대체로 수준이 높아졌다.


2부 축하공연은 지도교수(소프라노)가 오페라 곡을 풍부한 성량으로 시원하게 마무리했는데, 사회자는 전율을 느끼셨을 것이라고 하면서, 이는 세로토닌을 분비하여 안정을 주고 행복하게 한다며 이런 체험을 자주 하라고 조언하였다.


3부는 모두 오페라와 외국 가곡이어서 수료생들이 원어에 리듬과 음정까지 익히느라 고생했을 텐데, 특히 테너 두 분은 잘 소화해서 '브라보' 함성을 들으며 큰 박수를 받았다.


3부 축하공연은 지도교수인 바리톤 송기창이 '시간에 기대어'를 감성적으로 잘 불러 "역시 프로는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 7시에 시작한 공연은 2시간 30분간 쉬는 시간도 없어, 일부 관객들은 중간에 떠나 아쉬웠지만 나는 끝까지 남아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마지막 축하공연은 지도교수인 테너 하만택이 푸치니 오페라 투란도트 중 '넷순도르마'를 타고난 미성으로 시원하게 불러 피날레를 장식하였다.


넓은 홀이 텅 비다시피 띄어 앉은 관객들이었지만, 그들은 음악을 좋아하고, 성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어서 마음이 따뜻하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바쁜 시간을 쪼개어 성악에 입문한, 중장년 아마추어 성악가들은 무료공연을 준비하였고, 값비싼 무대의상을 빌려 입고, 대중 앞에 서서 떨리는 가슴을 진정하며 노래해 평생 잊지 못할 멋진 추억을 남겼다.


취미로 시작하였지만, 그분들이 진정으로 인생을 즐길 줄 아는, 용기 있는 청년들이 아닌가!


어제 아름다운 음악의 향연에 그들과 함께 할 수 있어 행복했다.


글쓴이,  서치펌 싱크탱크 대표 이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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