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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규선 Sep 13. 2021

행복한 남자


요즘 시간이 날 때마다 넷플릭스를 통해 영화를 즐겨본다.


며칠 전에 본 외국영화는 3시간 가까이 길어 다른 짧은 것을 볼까 하다가 제목이 마음에 들어 도전했는데, 노벨문학상 수상작인 덴마크 소설을 원작으로 한 '행복한 남자'였다.


꿈과 야망을 가진 청년의 고독과 절망, 신앙의 고뇌를 그린 영화는 보는 내내 긴장되었고, 결말이 어떻게 될지 궁금해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주인공의 불행한 환경이 유년기에 얼마나 큰 상처를 내고, 고통 속에 살게 되는지, 결국 그의 이기심과 자만심으로 세월을 뛰어넘어 세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는데 그토록 분노하고 저항했던 자기 아버지를 닮은 것에 좌절한다.


주님을 거역하면 추방될 것이라 말했던 목사인 아버지의 독선적인 신앙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쳤던 삶이었지만, 남자는 그 기독교 신앙 앞에 무릎을 꿇고 마음의 평온을 찾는다.


자신으로 인해 상처 받을 자식을 위해 혼자 나와 살게 되지만, 절망과 고독에서 해방감을 느끼는 남자는 마지막에 자신을 이해해주고 사랑해준 여인이 있었기에 결국 행복한 남자인 걸까?


주인공은 그 좋은 기회를 다 놓치고 시한부 암환자가 되어 뒤늦게 행복이 무엇인지 찾은 듯 하지만, 나는 그가 결코 행복한 남자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소설가 김홍신이 오늘 중앙일보에서 얘기한  '행복의 정의'를 읽고, 행복은 아주 가까이에 있으며 언제든지 느낄 수 있다는 것에 공감했다.


“아주 소소한 것이다. 밥에 김을 말아먹다가 느닷없이 맛있는 순간, 영화를 보다가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는 순간, 평소 못 먹던 고급 와인을 마시며 ‘와, 이 맛이야’ 느끼는 순간. 그 짧은 순간이 행복이다.


18년 동안 동묘역 한자리에서 파전과 막걸리를 파는 '허깨비 주막' 주인인 친구를 만나면 소소한 행복을 느낀다.


오래전에 재일교포 여성이 한 달간 주막을 드나들며, 혼자서 요리하고, 다양한 손님을 상대하며, 또 가끔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그 친구를 옆에서 쭉 지켜보며 쓴 글이 모티브가 되어 일본에서 '심야식당'이라는 영화와 뮤지컬이 되었다고 한다.


그런 재미있는 사연으로 자부심을 갖는 그도 코로나 때문에 그다지 돈은 벌지 못하나, 요즘 많은 자영업자들이 더 어려움을 겪고, 폐업까지 하는데, 본인은 아직도 일을 할 수 있어 감사하고, 75세까지 즐겁게 일하고 싶다는 그를 보면 우울했던 마음도 싹 가신다.


그러기에 나는 소설가 김홍신이 얘기하는 행복의 배터리가 떨어져 가면 충전을 하러 허깨비 주막에 간다.


내 어릴 적 향수가 물씬 풍기는, 서울에서 몇 안 되는 전형적인 한옥 막걸릿집에서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고 항상 하회탈 미소 지으며 묵묵히 일하는 그를 보고 힘을 얻는다.


또 그곳에서 내 좋은 친구들과 타임머신을 타고 학창 시절로 돌아가 탁자에 둘러앉아 술과 안주를 벗 삼아 마치 대학생처럼 허심탄회하게 얘기하다 보면 작은 행복이 봄 새싹처럼 무럭무럭 피어난다.


글쓴이, 서치펌 싱크탱크 대표 이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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