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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규선 Sep 13. 2021

노들섬에서


"오랜만이야?  요즘 어떻게 지내? 오늘 뭐해?  노들섬에 가본 적이 있지? "


결혼 전에 상도동에 살 때는 버스를 타고 노들섬을 수 없이 지나갔지만, 여태껏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어 궁금했다.


그런데 얼마 전에 TV에서 우연히 노들섬을 보고 충동이 일어나, 동작구에 사는 친구 J에게 시간이 되면 얼굴도 볼 겸해서 노들섬을 걷자고 전화하니 미세먼지가 심해 안 되겠다고 하며 미안해하였다.


창밖을 보니 그다지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고, 또 코로나 때문에 마스크를 쓰고 있어 크게 건강에 위협을 줄 정도가 아니었지만, 민감한 J를 설득할 자신이 없어 포기했다.


혼자 가기에는 뭣해서, 아내에게 최근 여의도에 오픈한 백화점 '더현대'에 가자고 하니, 기다렸다는 듯이 냉큼 '오케이' 하였다.


이에 백화점에 들렸다가 가까이에 있는 노들섬에 간다고 이실직고하니, 아내도 두 곳 모두 처음 가는 곳이라 흔쾌히 동의하여 금방 외출 준비를 하였다.


더현대는 매스컴에서 소개한 대로 규모가 컸고 평일인데도 인산인해였으며, 특이한 점은 고객을 사로잡기 위해 시계와 창문을 없앤 답답한 일반 백화점과는 달리 개방형이었고, 눈길 가는 곳마다 꽃과 나무로 조성되어 공원 같아 좋았다.


우리는 9호선 노들역에 내려 10분쯤 걸어가니 한강대교 중간에 예전에 '중지도'라고 불린 노들섬이 나타났다.


'백로가 노닐던 징검돌'이라는 노들섬은 흡사 중세시대의 성같이 보이지만, 모래밭에 가득한 갈대와 석양이 아름다워 용산 팔경 중의 하나로 불리기도 했다.


또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 씨와 함께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를 찾아 수원 화성으로 행차할 때 배다리를 이곳에 설치했고, 넓은 백사장은 여름에는 피서지로, 겨울에는 스케이트장으로 그리고 한때 대통령 선거 유세장으로 쓰였다고 한다.


우리는 기대 이상으로 맑은 하늘을 쳐다보며 타원형으로 생긴 둘레길을 걸었고, 훈훈한 강바람을 온몸으로 느끼며 아름다운 한강과 하나가 되었다.


아기자기하고 다양한 시설을 갖춘, 과거 정수장이었던 선유도공원과 비교하면, 그다지 볼 것은 없으나 잔디밭이 넓고 사방으로 탁 트여 시원하며, 도보 혹은 버스로 연결되는 접근성이 좋아 특히 젊은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추천하고 싶다.


선유도공원에서 볼 수 없는, 오픈형 도서관인 '노들 서가'는 편히 쉴 수 있도록 계단형으로 꾸며져 있지만, 나는 아내와 떨어져 바로 옆 '노들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수필집 2권을 속독했다.


창가에 앉아 따사로운 봄볕을 느끼며, 보고 싶은 단원을 발췌하며 읽는 기분은 말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흐뭇했고, 또 감미로웠다.


"따뜻한 집과 편안한 잠자리, 한잔의 커피에 감사하라! 우연히 발견한 노을에 발길을 멈추고, 순간의 감성 때문에 긴장이 해소되는 기분을 느껴보자!"


어떤 CEO는 매일 의자에 온몸을 편안히 늘어뜨리고 잠시 창밖을 멍하니 쳐다보다고 한다. 이 시간을 통해 진정한 휴식과 아이디어를 얻는 것이다.


대부분의 자영업자가 그렇듯이 나도 작년 초부터 코로나 때문에 비즈니스가 슬로해서 걱정이 태산이지만, 한편으로는 평일인데도 이렇게 짬을 내며 은근히 일상을 즐기는 또 다른 나를 보며 미소 짓는다.


서울 한복판에서, 그것도 '더현대' 같이 번잡하지 않고, 오히려 사람이 없어 조용한 이곳 노들카페에서, 내가 좋아하는 아메리카 커피를 한 모금 한 모금 음미하며 책을 읽으니 "최고가 되거나, 성공하지 못해도 인생이 즐거울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노들섬에서 비록 아름다운 노을을 보지 못했지만, 2시간 남짓 책과 함께 하며 작은 행복을 느낄 수 있어 정말 좋았다.


나는 보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즉시 연락하였고, 또 '잠깐이라도 보자'는 말을 좋아한다.


굳이 무언가 함께 하지 않아도 잠시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좋은, 그 감정에 대한 숨김없는 표현을 사랑한다.


단지 전화로 "일은 어때?  재미있어? "하며 인사치레를 하는 것보다는 차를 마시며 얼굴을 맞대 얘기를 나누는 것이 더 다정다감하지 않은가!


작년 가을 J를 노량진에서 만난 후에, 오늘 오랜만에 함께 식사하고 노들섬을 산보하고 싶었지만, 그의 얘기대로 다음을 기약해야겠다.


그때가 언제쯤일까!  J가 전화할 때까지 그냥 꾹 참고 기다려야 하나!  


글쓴이, 서치펌 싱크탱크 대표 이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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