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규선 Sep 13. 2021

떡 됐습니다


오래전에 길 가다가 어떤 노래를 듣고 "와! 이런 노래가 다 있네!"  무척 특이하고 재미있어 그 노래가 무엇인지, 누가 불렀는지 궁금해서 인터넷으로 찾아봤다.


와그나노 니 또 와그라노

와그라노 니 또 와그라노

와그라노 니 또 와그라노

와그라노 니 또 와그라노


와그라노 워우와

아우와 그래쌌노

뭐라케쌓노 뭐라케쌓노

니 와그라노

우짜라꾸 이허 웃네

우짜라고 웃네네네


가수 강산에가 부른 '와그라노'라는 노래인데, 시끄러운 곳에서 처음 몇 소절을 듣고 "아프리카 원주민 노래인가? 무척 중독성이 있네"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조금 더 들어보니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여서, 나같은 서울사람도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데 아무리 우리말이 뛰어난 외국인이라도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속으로 웃었던 적이 있다.


거칠면서도 담백한 목소리로 삶을 노래하는, 가수 강산에는 예명도 순수하게 우리말로 지었고, 그의 히트곡인 "~라구요, 넌 할 수 있어, 와그라노" 등을 들으면 자유롭고, 유쾌하며, 지극히 한국적이어서 친근하게 느껴진다.


~~~


얼마 전에 친구 4명과 등산 갔다.


그중 2명(A, B)은 술을 잘하고, 나와 C는 소주 한잔만 마셔도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술에 약한 편이다.


그날 아침 아주 사소한 문제로 부부싸움을 하고 나온 경상도 사나이 A, 그리고 산행 도중 정자에 등산스틱을 놓고 와 1km 거리를 왕복하여 기진맥진했던 B는 오래전부터 아내와 소원했는데, 그들 두 친구는 각자의 스트레스를 풀렸는지 정상(260미터)에 오르자 좌판을 깔고 소주를 주거니 받거니 했다.


처음에는 C와 나도 그들 옆에 앉아 분위기를 맞추다가, 상당한 시간이 지나 엉덩이를 털고 일어서면 A와 B는 천천히 가자며 성화였다.


그렇다고 마냥 기다릴 수 없어 두 친구에게 뒤따라 오라고 얘기하니, 그들은 처음에 50미터, 100미터 간격으로 점점 멀어지더니 결국 우리들 시야에서 벗어났다.


성곽을 따라 하산한 후에 길목에서 그들이 어디까지 왔나 목을 빼고 쳐다볼 수 없어 술이 깬 A에게 전화하니, B가 잔디밭에 누워있어 식사 장소를 알려주면 같이 그곳에 가겠다고 하였다.


우리는 늦은 점심을 하고 20분쯤 지났을까, A가 식당 문을 열었고 뒤이어 B가 갈지자걸음으로 들어왔다.


대낮에 만취한 B는 정신이 돌아온 듯 아닌 듯 횡설수설하니 갑자기 조용한 식당이 시끌벅적했다.


오후 3시가 넘어 선약이 있던 C는 양해를 구해 떠났고, 나와 A는 술에 떡이 된 B를 데리고 식당 근처 카페를 찾아 헤매다가 어느 편의점 벤치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두 개씩이나 먹으며 정신을 차린 후에 헤어졌다.


~~~


오늘 강산에가 부른  "떡 됐슴다." 라는 노래를 처음 들었다.


이해하기 쉽고, 해학이 넘치는 노래를 들으니 요즘 도통 웃을 일이 없는데 듣는 내내 뿡뿡 웃음이 터져 나온다.


노래를 듣다 보니, 그날 술에 떡이 된 친구 B가 생각났다.


"다신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한 지 며칠도 안돼

떡 됐슴다. 또 떡 됐슴다.부끄럽슴다. 부끄럽슴다

오 내가 왜 그랬을까

좋은 사람들 만나는데

따뜻하게 기분좋게 시작했는데

떡 됐슴다. 또 떡 됐슴다. 부끄럽슴다. 부끄럽슴다

다음번엔 맨 정신에 제대로 보고싶슴다

멀쩡하게 다시 한번 제대로 보고싶슴다

떡 됐슴다. 또 떡 됐슴다"

(떡 됐슴다. 가수 강산에)


그가 이 노래를 알고 있을까!  

재미삼아 이 노래를 그에게 보내줄까, 말까!


글쓴이, 서치펌 싱크탱크 대표 이규선

작가의 이전글 노들섬에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