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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규선 Sep 13. 2021

혹시 백사실계곡에 가보셨나요?


모처럼 전 직장 동기들과 작년 11월에 개방한 북악산 코스(곡장 전망대~청운대 안내소)를 등산하고, 백석동천과 백사실계곡을 거쳐 상명대 사거리 방향으로 내려왔다.


아직 코로나 방역문제로 5명 이상 모임이 금지되어 동행한 동기 4명은 공교롭게도 모두 '李氏'여서 경주 이 씨, 덕수 이 씨, 여강 이 씨, 그리고 전주 이 씨인 나까지 모두 각각의 문중을 대표하는 모양이 되었다.


우리는 한성대입구역에서 만나 버스를 타고, 성북 우정의 공원 삼거리에 내려, 한때 요정으로 유명세를 치렀던 '삼청각'을 끼고 한양도성의 북문인 '숙정문' 안내소로 올라갔다.


오랜만에 와서 그런지 청와대가 가까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신분 확인 없이 그냥 출입증을 나눠줘 안내원에게 물어보니, 지금은 CCTV로 확인하며, 겨울에는 오후 5시 이후에 출입이 통제된다고 하여 앞으로 일일이 신분증을 챙길 필요가 없어 좋았다.


예년과 달리 올겨울은 무척 추웠고 눈비도 자주 왔는데, 오늘은 봄날처럼 따뜻했고, 하늘도 맑아 등산하기에 최고였다.


그렇지만, 아직 겨울철 등산이라 두툼한 파카를 입고 오르니 금세 땀이 났고, 산비탈에서는 찬바람도 불어, 수 차례 입었다 벗었다를 반복하니 어느새 북악산 '곡장'(한양성곽 중 일부분을 튀어나오게 한 부분으로 성벽에 기어오르는 적을 쏘거나 공격하기 위한 방어시설)에 다다랐다.


40미터쯤 더 오르니, 이번에 만든 북악산 최고의 포토존인 '곡장 전망대'가 요새처럼 가로놓여 있었다.


이제까지 북악산은 '곡장'에서 북한산과 평창동을 쳐다보는 재미로 올랐는데, 지금부터는 철제로 튼튼하게 만든 '곡장 전망대'에서 운치 있는 한양도성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거나, 가까이 남산부터 멀리 일산까지 한눈에 볼 수 있어 인기 있는 장소가 되었다.


우리는 남들처럼 최상의 배경을 잡아가며, 단독으로 혹은 단체로 사진을 찍으며 북악산 방문 기념사진을 남겼다.


그리고 곡장 뒤에 있는 벤치에 나란히 앉아 훈훈한 봄기운을 느끼며 간식을 나눠먹었다.


씨 4인방은 그동안 집콕하며 쌓인 스트레스를 한꺼번에 풀려는 듯이 서로 얘기하고, 먹느라 바빠서 각자 입이 하나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다녔던 청운대 쉼터, 1.21 사태 소나무 자리 그리고 창의문 코스가 아닌, 이번에 개방된 3번 출입문 청운대 안내소로 내려오니 마치 잘 꾸며진 산길을 걷는 듯 분위기가 좋았고, 수백 개의 계단이 아닌, 바로 북악 스카이웨이와 연결되어 체력 부담이 없었다.


예정에 없던 '백사실계곡'을 방문한 것은 오늘 또 하나의 하이라이트였다.


지금 서울 한복판인 종로구에 과수원과 채소밭이 있고, 개울에 1 급수 생물인 도롱뇽이 살고 있는 두메산골이 있다면 믿을 수 있을까?


무려 30년 전에 연탄과 장작을 때고 있는 낙후된 부암동 '능금마을'을 TV에서 보고 깜짝 놀라, 며칠 후에 가보니 정말 딴 세상이어서 마치 60~70년대로 회귀한 것 같았다.


그 후 수년 전에 아내와 또 그곳을 방문했지만 그다지 변하지 않았고, 그곳에서 본 탐스럽게 익은 빨간 앵두나무가 생각나 언제 또 시간을 내어 다시 가고 싶었다.


그 능금마을(북악산 뒤에 있어 뒷골마을로 불림) 400미터 아래에 '백석동천'과 '백사실계곡'이 있다.


신선이 노닐만한, 소나무 숲이 아름답고 고즈넉한 그곳은 백사 이항복의 별장이었다고 하는데, 경주 이 씨 후손인 친구는 처음 와본다며 기념사진을 찍었고, 점심때  탕수육에 군만두까지 쏘며 기분 좋은 표시를 했다.


가수 이용이 부른 "종로에는 사과나무를 심어보자" 노래를 읊조리며 오늘 미처 가보지 못한 능금마을에 대한 아쉬움을 달랬다.


수백 년 전 조선시대와 적어도 수십 년 전 자취를 뒤로 하고 산길을 따라 내려오니 세검정 터가 보였고, 큰길로 나와 흥선대원군의 별장이었던 석파정을 지나 가파른 서쪽 언덕길을 오르니 상명대학교가 나타났다.


방학이라 그런지, 학교 앞에 있는 제법 세련되어 보이는 카페에는 손님이 없어 우리는 창가에 앉아 따스한 아메리카를 마시며 못다 한 얘기를 나눴다.


입사동기로서 함께 직장 생활하면서 겪은, 누차 들어도 전혀 지루하지 않은, 케케묵은 얘기까지 꺼내고, 박장대소하며 우리는 각자 남아있던 스트레스를 말끔히 해소했다.


오늘 개방된 북악산 곡장 전망대 코스가 환상적이었지만, 수려한 백사실계곡은 무척 신선했고 모두 처음이라고 하여 기분이 좋았다.


다음에도 멋진 곳을 소개해 달라는, 어느 이 씨 문중의 대표를 생각하며 나는 자칭 무보수 한양도성 홍보대사로서 긍지와 자부심을 느끼며 부처님 미소를 짓는다.


글쓴이, 서치펌 싱크탱크 대표 이규선



수년 전에 아내와 능금마을에 갔을 때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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