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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규선 Sep 13. 2021

혜화동에서


언제부터인가 '혜화동'이라는 글자를 봐도 좋고, 누가 혜화동 얘기만 꺼내면 눈이 번쩍이며 귀를 기울일 정도로 나에게는 정감 어린 동네다.


그것은 고교시절 3년 내내 무거운 책가방을 들고 청춘의 꿈을 그리며 공부했던 모교가 그곳에 있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젊은 시절 주말이면 대학로를 어슬렁거리며 연극과 뮤지컬을 보러 다니던 문화의 거리였고, 최근에는 뒷짐을 지고 걸어도 20분이면 올라가는 낙산 꼭대기에서 서울시내를 360도 빙 둘러보다가 내려오는 그냥 쉼터 같은 곳이다.


그러다 보니 나는 언젠가 동물원이 부른 '혜화동'이라는 노래를 듣고 심장이 멈춘 듯했고, 그때부터 동물원 팬이 되었다.


그 노래는 감성적인 멜로디도 좋지만, 잔잔한 가사 하나하나가 우리들 삶으로 들어와 추억여행을 하도록 일깨워주는 것에 매력이 있었다.


오늘은 잊고 지내던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네

내일이면 멀리 떠나간다고


어릴 적 함께 뛰놀던

골목길에서 만나자 하네

내일이면 아주 멀리 간다고


덜컹거리는 전철을 타고

찾아가는 그 길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잊고 살아가는지


어릴 적 넓게만 보이던

좁은 골목길에

다정한 옛 친구

나를 반겨 달려오는데


어릴 적 함께 꿈꾸던

부푼 세상을 만나자 하네

내일이면 멀리 떠나간다고


언젠가 돌아오는 날

활짝 웃으며 만나자 하네

내일이면 아주 멀리 간다고


덜컹거리는 전철을 타고

찾아가는 그 길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잊고 살아가는지


어릴 적 넓게만

보이던 좁은 골목길에

다정한 옛 친구

나를 반겨 달려오는데


라라 랄라라 랄라 랄라라

라랄랄라 라

우린 얼마나 많은 것을 잊고

살아가는지


라라 랄라라 랄라 랄라라

라랄랄라 라

우린 얼마나 많은 것을 잊고

살아가는지


매년 서너 번 일부러 혜화동을 찾아 전망 좋은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7080 노래를 들으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쳐다보았고, 눈에 띄는 공연이 있으면 학생들처럼 서브웨이에서 간단히 요기를 한 후에 객석 한가운데 당당히 앉아 관람객들의 평균 연령을 높이곤 했다.


~~~~~


지난주에 한 친구가 대학로에 뮤지컬 공연을 보러 가자고 했다.


그렇지 않아도 코로나19로 집에 갇혀있어 답답했고, 한동안 정서적, 문화적인 갈증이 심했는데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었다.


'아리 아라리'


조선시대 아우라지 처녀 총각의 사랑이야기와 정선 떼꾼들이 경복궁 중수를 위해 한양으로 가는 이야기가 맞물리면서 가족과 고향의 소중함을 해학적으로 풀은 멋진 공연이었다.


75분 동안 쉼 없이 춤을 추고 노래하는 30명 남짓 연기자들의 열기는 한 칸씩 건너 앉아 빈 곳이 많은 객석을 뒤엎고, 활활 타오르게 했다.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음악, 무용, 영상 등 다양한 장르가 혼합되어 시청각적인 즐거움을 주었고, 오랜만에 향토색이 짙은 뮤지컬을 보니 우리 조상이 "한(恨), 정(情), 흥(興)"이 많은 민족임을 다시 한번 실감할 수 있었다.


오랜만에 낭만과 사랑이 넘치는 청춘의 거리, 대학로 혜화동 밤길을 걸었고, '아리 아라리' 공연을 통해 감동과 전율의 퍼포먼스를 느꼈으니 한 10년은 젊어진 것 같다.


친구야! 나는 한가하니 아무 공연이면 어떠냐!


언제든지 불러다오! ^^


글쓴이: 서치펌 싱크탱크 대표 이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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