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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규선 Sep 13. 2021

내가 가끔 커피를 마실 때


좋은 인생이란, 건강과 재산 그리고 차와 커피를 마시는 인생입니다.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리라 믿습니다.(조나단 스위프트)


내가 처음 다방에서 커피를 마셨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학교 정문 새 다방에서 친구들과 그 당시 한창 유행했던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들으며 마셨던, 부드러운 커피맛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또한 군대 시절 파평산이 바라다 보이는 전방 OP에서 어여쁜 미군 여병사와 나란히 앉아 어설픈 영어로 얘기하며 먹었던 커피맛은 달콤했다.


더구나 10여 년 전 가을, 살얼음이 끼었던 설악산 대청봉 정상에서 멀리 단풍 진 산허리를 내려다보며 음미했던 따스한 믹스커피 한잔이 힘겹게 올라 지친 피로를 말끔히 씻어 주었다.


원두에 따라 바리스타에 따라 천 가지의 맛을 낸다는 커피의 매력에 빠진 사람들이 주변에 많은데, 솔직히 나는 커피맛을 잘 모른다.


내가 원두커피를 처음 경험했던 기억도 생생하다.


H대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KIST에 근무하다가 30대 중반에 뜻한 바 있어 미국에 다시 가서 신학석사를 받고, 일리노이주에서 목회활동을 하고 있는 L목사의 권유 때문이었다.


학창 시절 우리 둘은 실과 바늘처럼 늘 붙어 다녔는데, 믹스커피를 즐겨먹던 나에게 설탕은 몸에 좋지 않으니 보리차 같은 원두커피를 마셔보라고 하였다.


그때 너무 밍밍해서 무슨 맛인지 모르고 한동안 먹었는데, 직장생활을 하면서 다시 달달한 인스턴트커피에 빠져들었다.


더구나 그 당시 매년 여름마다 부드럽고 시원한 아이스커피에 반해 수시로 냉장고에서 얼음을 꺼내 만들어 먹었다.


나는 커피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기분에 따라 아메리카노를 한두 잔 마신다.


바닐라 라테 등 단것은 건강에 나쁘고, 또한 마신 후에 입안이 개운하지 않아, 위에 자극이 없는 소프트한 아메리카노가 나에게 딱 맞다.


내 주위에는 바리스타 자격증을 취득하고, 하물며 집에 원두를 볶는 기계를 두고 수시로 원하는 맛을 즐기는 친구도 있다.


커피에 대한 그들의 남다른 취향과 정성에 놀라지만, 나는 단순해서 어느 커피숍에라도 가게 되면 여름이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겨울이면 핫아메리카노를 시키면 그만이다.


"너무 진하지 않은 향기를 담고

진한 갈색 탁자에 다소곳이

말을 건네기도 어색하게

너는 너무도 조용히

지키고 있구나

너를 만지면 손끝이 따듯해

온몸에 너의 열기가 퍼져

소리 없는 정이 내게로 흐른다"


지금은 기가 막힌 일이지만, 초창기 가사가 퇴폐적이라 금지되었던, 노고지리가 부른 '찻잔'이라는 노래다.


이 노래를 들으면 커피의 따스함과 향기가 온몸을 감싸는 것 같다.


오래전에 청춘남녀가 다방에서 데이트할 때 눈물 곳이 없어 무심히 바라보던 찻잔, 또한 살짝 한 모금 마시며 상대를 쳐다봤던 커피에 대한 추억을 내 또래는 다 경험했을 것이다.


그 시절, 어느 부잣집에 초대받으면 고급스러운 찻잔에 놀라고, 비싼 그래뉼 커피의 부드러운 맛과 향기에 감탄해 한동안 회자된 적도 있었다.


옛날에는 지인들과 만날 때 식사만 하고 그냥 헤어졌는데, 어느 때부터인가 일부러 카페를 찾아 그곳에서 얘기를 나누는 것이 더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우리 가족이 외식을 하려면 아내는 맛집을, 딸은 그 지역의 멋진 카페를 찾는 것이 각자의 숙제였다.


커피의 매력은 무엇일까?


커피를 마시면 집중력이 높아지고 피로 해소에 좋다는데, 나는 거트루드 스타인의 얘기에 동감한다.


 "커피를 마실 때가 정말 좋다. 생각할 시간을 주기 때문이다. 그것은 음료 이상이다. "


그래서 나도 딸처럼 강과 산이 보이는 전망 좋은 카페에서 혹은 세련된 노천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유유자적할 때 소소한 행복을 느낀다.


그런데 뭐가 그리 바쁘다고 이태리 사람들은 하루에 2~3잔씩 쓰디쓴 에스프레소를 마치 약을 먹듯이 홀짝 마시고 가는데 그들이 과연 커피의 맛과 향을 제대로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의자에 편하게 앉아 노고지리가 부른 '찻잔' 노래 가사처럼 분위기를 그윽이 느끼며 음미하면 더 좋지 않을까?


글쓴이: 서치펌 싱크탱크 대표 이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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