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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규선 Sep 13. 2021

종친회 풍경


오늘 성남에 있는 종친회 빌딩에서 총회를 개최했다.


이번에 중국 우한발 코로나19 때문에 몇몇 종원이 연기할 것을 요청하였지만, 정관 수정 및 신규 임원 선출 문제로 지체할 수 없어 예정대로 진행했다.


우리 집행부는 만일의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하나부터 열까지 철저히 준비하였다.


매년 총회 후에는 단체로 2층 일식당을 이용하여 세입자의 편의를 봐주었으나, 이번에는 수십 명의 종원들에게 나눠줄 영양떡을 맞춰 일일이 포장하였다.


나는 회의 시작 1시간 전인 오전 9시에 도착하였고, 공항에서나 쓰는 고급 영상카메라와 손소독제, 그리고 수십 장의 마스크까지 완비하여 집행부원들과 예행연습을 하였다.


우리는 선별 진료소처럼 ㄱ자형 동선에 따라 담당 인원을 배치하였고, 회의장에 들어서면 이름표와 회의자료를 나눠준 후에 넓게 떨어져 앉게 하였다.


올해도 작년과 비슷한 인원이 참석했는데, 기대했던 여성 종원은 한분도 없었고, 기저질환이 있어 보이는 원로들은 거의 참석하지 않았다.


부회장인 나는 처음으로 아들을 데리고 갔는데, 다른 임원들도 부자가 출동하여 종친회가 세대교체하려는 듯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오늘 참석한 종원은 26세부터 95세까지 연령대가 넓으나, 예년과 달리 30~40대가 많이 참석하여 확실히 젊어지고 있다.


우리 전주 이 씨 종친회는 5대조 할아버지가 정착한 성남시 하산운동 인근에서 시작되었는데, 부친이 5년 전에 돌아가신 후에 내가 우리 집안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나는 30여 년 전부터 종친회에 참석하고 있는데, 내 10년 위의 선배들은 원로, 고문자격으로 슬슬 뒤로 물러나고 있다.


과거 10년 전까지만 해도 첫째 할아버지 자손인 종손의 파워에 종친회가 좌지우지되곤 했으나, 얼마 전에 치매에 걸려 참석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둘째 할아버지 자손인, 95세이신 나의 백부가 노익장을 과시하였으나, 젊은이들의 참신한 생각을 따라가기 어려워 점점 설자리를 잃어가는 것이 정말 안타까웠다.


매년 총회는 1년에 한 번뿐이라서 그동안 참석할 기회가 없었던 종원은 정관과 결산자료를 보고 이해하느라 바쁘고, 임원 선출까지 하면 그제야 대체적인 윤곽을 그릴 수 있다.


다른 종친회도 비슷하겠지만, 총회는 질문하고 대답하느라 시간이 다 가고, 이해관계가 얽기면 시끄럽기 일쑤였으나, 이번에는 다행히 그런 싸움꾼이 부재하여 예상보다 일찍 끝났다.


코로나19 때문에 예년과 달리 변한 총회 모습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일가친척이라 반갑게 악수하던 모습은 인사말로 대신했고, 마이크는 회장과 사무국장 이외에는 잡지 않았으며, 다과도 나눠주지 않았다.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어 오랜만에 나온 종원은 누가 누구인지 모르고, 내 아들처럼 처음 출석한 경우 뉘 집 자식인지 정식으로 소개하지 않으면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나를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올해 55세가 된 종원이 총회가 끝난 뒤에 내 아들을 쳐다보며 한 말이 나를 웃음 짓게 한다.


''아저씨는 올해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글쓴이:  서치펌 싱크탱크 대표 이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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