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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규선 Sep 13. 2021

9988 234


오늘 아침 8시 마포에 홀로 계신 모친에게서 전화가 왔다.


내가 거의 전화를 드리고 있어, 이렇게 일찍 전화가 오는 경우가 드물어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통상 모친은 밤중에 한두 번 화장실을 가는데 새벽 3시부터 소변이 안 나오고, 특히 배변활동이 안되어 어쩔 줄을 몰라 당황스럽다고 하셨다.


말하자면, 변비로 인해 아파 서 있기도, 그렇다고 앉아 있을 수도 없어 큰 일 날 것 같아 무작정 택시를 집어타고 서울역 세브란스에 가셨다.


경비원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의사 선생님을 찾으니 오늘은 검사를 안 한다며 딱딱하게 얘기해서 무슨 병원이 이런 경우가 있냐며 서운해하셨다.


그때 나에게 전화로 다른 병원은 문을 열었는지 물어, 나는 오늘은 휴일이라 일반진료는 안 하고 응급실만 운영되니 가까운 을지 백병원으로 가시라고 했다.


나는 급히 고양이 세수를 하고 주섬주섬 옷을 챙긴 뒤에, 차를 몰고 백병원으로 갔다.


응급실에 들어가니 모친은 링거를 꽂은 채 병상에 누워계셨다.


담당 간호사에게 문의하니, 조금 전에  X -Ray를 찍었고, 혈액검사도 하여 1~2시간 뒤에 결과가 나오는 대로 관장 등 후속조치를 한다고 했다.


모친은 전화 목소리와는 다르게 죽을 것 같았던 고통이 없어져 한시름 놓은 상태여서, 자초지종을 물으니 어젯밤 곶감 몇 개 먹은 것이 화근인 것 같다고 하셨다.


피곤한 것 같아 주무시라고 얘기한 후에, 밖에서 1시간 정도 기다리니 간호사가 나를 불렀다.


모친은 방금 화장실을 다녀와서 배변 문제를 완전히 해결해 관장이 필요 없고, 링거도 빼는 것이 좋겠다고 하셨다.


병원에 온 지 2시간도 안되어 링거 한 대 맞았을 뿐인데, 플라세보 효과인지 무슨 이유로 완쾌했는지 모친은 하루치 변비약을 받은 후 퇴원했다.


서둘러 아침 겸 점심식사를 한 후에, 마포 집에 모셔 드렸다.


왜 가까운 신촌 세브란스가 아닌, 서울역 세브란스에 갔는지, 그리고 경과도 궁금해 조금 전에 모친께 전화했다.


확인해 보니, 그곳은 2년 전에 여동생이 모친을 모시고 종합검진을 한 곳이었다.


서비스가 무척 좋았던 그곳을 모친은 병원으로 착각했고, 몸이 아파 거동이 불편한 노인에게 젊은 경비원이 퉁명스럽게 대답한 것이 못내 섭섭했던 것이다.


~~~~~


어제 토요일 대학 동기들과 북서울 꿈의 숲(전 드림랜드)과 오패산을 산보했다.


전국의 웬만한 산은 다 가본 M이 전혀 기대하지 않았는데 모처럼 참석해서 반가웠다.


왜냐하면 그의 부모가 7년 전부터 치매에 걸려 간병하느라 그들 부부가 바깥출입도 제대로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그의 모친은 중증이어서 감당하기 힘드나, 오전에 다행히 괜찮아 요양보호사에게 맡기고 나왔다고 하였다.


남에게 싫은 소리 한번 하지 않는 그도 오랜 기간 시달리다 보니 처음과는 달리 부모에 대한 측은지심은 많이 식었으리라!


''긴 병에 효자가 없다''는 말이 있지만, 완쾌될 수 없는 치매노인을 오늘도 묵묵히 간병하는 그에게 힘찬 박수를 보낸다.


~~~~~


오늘 아침 나를 잠시 긴장시켰지만, 모친은 친구들과 친목회, 노래교실을 다니며 노년을 즐기고 있다.


모친은 5년 전에 돌아가신 부친처럼 2~3일 병원신세를 지다가 가고 싶다고 가끔 얘기하신다.


그래요!  


자식들 불편하지 않게 우리 모두 9988  234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이틀 앓고 3일째 행복하게 죽는 것)를 실천하지요!


글쓴이  서치펌 싱크탱크 대표 이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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