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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규선 Sep 13. 2021

가족 이야기


얼마 전에 우리 집에서 모친과 동생 가족들이 모여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아이들이 유학, 아르바이트, 그리고 친구들과 약속이 있어 공교롭게도 어른들만의 모임이 되었다.


우리들은 대개 뷔페 레스토랑, 고깃집 혹은 한정식집에서 식사를 하고, 간단하게 커피를 마신 후에 헤어지곤 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오랜만에 집에서 편안하게 식사하며 다과를 나누는 것이 어떠냐고 했는데, 동생들은 음식을 만드느라 고생하지 않게 꼭 사다 먹자는 것에 동의하였다.


우리 부부는 김치와 국 이외에 회초밥, 연어샐러드부터 과일까지 모두 대형마트에서 사 왔고, 식탁에 빙 둘러앉아 얘기를 나누며 먹었다.


식사 후에는 4년 전에 돌아가신 부친을 그리며, 생전에 찍어놓은 100개 가까운 비디오테이프를 일일이 보면서 준비했었다.


그런데 워낙 오래된 8mm 일제 비디오카메라여서 최근 국산 디지털 TV와 호환이 안되어 포기하였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부부대항 젠가와 윷놀이 등 몇 가지 게임을 준비했지만, 이것들은 설날에 하자고 제안하는 바람에 그만두었다.


왜냐하면 동생들이 갖고 온 케이크와 커피를 마시며 얘기하다가 자리를 이동해 훈훈해지는 대화 분위기를 깨는 것보다는 모친을 중심으로 부부끼리 테이블에 둘러앉아 지나간 얘기를 하는 것이 더 즐거웠기 때문이었다.


장남이며 집주인인 나는 서대문구 북아현동 시절에 부친의 사업실패로 동작구 상도동 달동네로 이사 갔던 힘든 시절을 꺼내며 얘기를 시작하였다.


나는 그때 사촌누님의 소개로 아내를 만났는데, 아내와 나는 서로 어떤 점이 끌렸는지 얘기했다.


아내는 연애시절 내가 준비한 유머가 재미없었지만 그냥 웃어주었다고 이제야 얘기하는 바람에 배꼽을 잡았고, 결혼에 골인하기까지 과정을 감동적으로 펼쳐 좌중을 사로잡았다.


내 바로 옆에 앉았던, E대를 나온 막내 여동생은 직장상사인 노총각 과장님과의 만남이 유행가 가사처럼 ''우연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사내 여직원들 중 눈에 띄게 인기와 관심을 독차지한 자기를 매제가 집중 공략해 항복한 결과였다고 침을 튀기며 얘기해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정작 궁금한 것은 남동생 부부의 첫 만남이었다.


나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이번에 자세한 내막을 알고 나서 깜짝 놀랐다.


마포 부잣집 딸인, 키가 크고 미모인 25세 초등학교 여교사가 학교에 3대뿐인 자가용을 몰고 다니다가 접촉사고가 나서 카센터에 들렸다.


그때 동생도 똥차를 수리하려다가 킹카인 제수씨를 보고 첫눈에 반해,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명함을 주며 만나자고 했더니 그다음 날 제수씨가 연락이 와서 데이트를 시작했다고 하였다.


키가 크고, 체력장 만점에 운동으로 다져진 체격, 특유의 유머감각, 그리고 직장 내 최우수사원(나중에 그룹 회장상을 받아 과장으로 1년 특진)이었으나, 그 당시 상도동 달동네 청년에게는 제수씨가 언감생심이었다.


아무튼 우리 3남매는 저마다 타고난 자질과 불굴의 정신을 무기로 달빛 환하고, 공기까지 맑은 산동네를 벗어나 제 짝을 찾아 결혼에 골인하였다.


요즘 세상이 하도 어수선하여 주변에 경제적으로 어렵고, 이혼한 부부가 많은데 아직도 일하며 건강하게 사는 것에 감사하며 모친과 우리 모두를 위해 힘찬 격려의 박수를 보냈다.


그리고 갓난아기였던 아이들이 점점 커가면서 겪었던 에피소드, 부모님과의 소중한 추억, 그리고 대한의 남아로서 군대까지 갔다 온 아이들이 할머니 댁을 방문한 일 등 가슴 따뜻한 얘기들은 몇 번 들어도 즐거웠고, 웃음꽃을 피우게 하였다.


이것이 바로 소확행 아닌가?


글쓴이   서치펌 싱크탱크 대표 이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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