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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규선 Sep 13. 2021

석촌호수

모처럼 아내와 석촌호수 둘레길을 한 바퀴 돌았다.

코로나19 때문에 한동안 폐쇄되어 매년 구경했던 석촌호수의 벚꽃은 올해 TV에서 보았다.


그런데 최근 지인이 단체 카톡에 보내온, 짙붉은 립스틱 색깔로 화려하게 장식된 영산홍을 지금 볼 수 없다면 너무 아쉬울 것 같았다.


그래서 바깥바람도 쐴 겸해서 오랜만에 나오니 하늘이 맑고 깨끗해 날갯짓만 빨리 하면 새가 되어 날아갈 것 같았고, 물이 오를 대로 오른 푸른 나무들은 보는 눈을 시원하게 하였다.


역시 영산홍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았고, 사시사철 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나는 석촌호수 둘레길을 천천히 걸으며 소소한 행복을 느낀다.


내 주변에 이렇게 아름다운 호수가 있어 감사하고, 몇 년 전 호수 가운데에 연결다리를 놓아 체력 부담 없이 반 바퀴만 돌아도 되며, 더구나 자연과 벗하며 마치 꿈속 같은 꽃길을 걸을 수 있어 좋다.


흥미로운 것은 열에 아홉 대부분의 사람들이 둘레길을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아 이를 따라 하지 않으면 이곳 규칙에 어긋난다며 한소리를 들을 것 같은 분위기여서 웃음이 나왔다.


팔(8) 자형 석촌호수 다리 부근에는 남녀노소가 좋아할 예쁜 벽화가 있어 이미 포토존이 되었고, 그 옆에는 내 또래 중년 아줌마가 귀에 익은 피아노곡을 치며 실력을 뽐내고 있었다.


조금 걷다가 아내와 '낙원 스낵'에서 예쁜 호수를 바라보며 커피 한잔 마시려던 계획은 코로나로 매직아일랜드 출입문이 닫혀 아쉬웠다.


매직아일랜드 한쪽에 커다랗게 써붙인 Nakwon Snack을 이왕이면 Paradise Snack으로 바꾸면 외국인들도 쉽게 알고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롯데월드는 아들이 어릴 때 연간회원권을 끊어 하루가 멀다 하고 갔던 놀이터였고, 결혼기념일 때 가본 호수 카페 '더 다이닝' 은 지금 리모델링하고 있지만 모두 추억의 장소가 되었다.


호수가 바로 내려다보이는 벤치에는 젊은 청춘들이 전세 내어 앉아 있었고, 넓은 야외공연장도 햇빛을 피해 그늘진 곳마다 다들 꿰차고 있었다.


한때 내 좋은 사람들과 지나가는 행인들을 쳐다보며 얘기했던 벤치까지 앉을자리가 없어 우리는 이곳저곳에 얽힌 사연들을 회상하며 마냥 걸었다.


수십 년간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석촌호수 둘레길을 걸어 계절마다 색다른 느낌을 받았지만, 역시 봄날에 꽃길을 걷는 기분은 최고였다.


올해는 어린이대공원, 아산병원 둘레길

, 그리고 올림픽공원 등에서 벚꽃을 구경했기에 그리 섭섭하지는 않다.


더구나 이곳에서 영산홍 꽃길을 걷고 있지 않은가!


얼마 전에 끝난 TV 드라마 '꽃길만을 걸어요'를 보며 코로나로 힘든 시간을 보내는 많은 사람들이 소소한 재미를 느꼈을 것이다.


나는 제대로 본 적이 없지만, 드라마 제목처럼 꽃길을 걸으면 누군가의 삶이 긍정적으로 변할 것이다.


석촌호수 꽃길을 한 바퀴 돈 후에, 아내와 벤치에 기대앉아 호수의 윤슬을 바라보며 유유자적하는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그대 사랑하는 난 행복한 사람

잊힐 때 잊힌대도

그대 사랑받는 난 행복한 사람

떠나갈 땐 떠나간대도

어두운 창가에 앉아

창밖을 보다가

그대를 생각해보면

나는 정말 행복한 사람

이 세상에 그 누가 부러울까요

나는 지금 행복하니까.


(이문세의 행복한 사람)


글쓴이 : 서치펌 싱크탱크 대표 이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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