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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규선 Sep 13. 2021

김치냉장고

마포에 혼자 사시는 모친을 위해 얼마 전에 김치냉장고를 새로 사드렸다.

~~~~~


지난 설날에 김치냉장고가 고장이 난 것을 목격하고, 즉시 전원을 껐다 켠 후에 계기판을 조작해 보았으나 전혀 반응이 없었다.


모친은 그리 급한 것이 아니니 천천히 하는 것은 어떠냐고 하셨지만, 밖에 놓아둔 김치가 빨리 익어버린다는 여동생의 성화에 못 이겨 수리가 안되면 새로 사기로 했다.


설이 지나자마자, 여동생은 S전자 서비스센터에 연락해 수리를 부탁했고, 연륜 있어 보이는 기사가 모친 댁을 방문해 점검해보니 고장 났다며 미안한지 출장비도 받지 않고 가버렸다.


다음 날 나는 강변 T마트를 돌아다니며 국내 유명 브랜드의 스탠드형과 뚜껑형 타입 김치냉장고 몇 개를 비교하였다.


대리점 한 곳에서 노인이 쓰기에 편한 뚜껑형 냉장고를 선택하니, 아침이라 싸게 판다는 가격이 나중에 인터넷으로 확인해보니 11만 원이나 비쌌다.


그래서 10년 넘게 잘 썼던 S전자 제품은 포기하고, 지금까지 고장 한번 없는 우리 집 제품과 똑같은 D브랜드를 인터넷으로 주문했다.


다음 날, 설치기사가 방문하기 몇 분 전에 마포에 도착해 기다리니 집 앞에 김치냉장고를 가득 실은 트럭이 보였다.


즉시 내려가서, 건장한 체격의 40대 기사지만 혼자서 그 무거운 냉장고를 들고 가기에는 무리가 있어 도와주겠다고 하니 괜찮다고 하였다.


도대체 엘리베이터도 없는 4층까지 어떻게 들고 올라갈 수 있을까 궁금하였다.


그런데 2층 계단에 자전거 등 적재물이 쌓여 공간이 협소해 옆에서 구경만 하던 나의 도움이 필요했다.


우리는 냉장고 밑을 잡고 들어 올려 커브를 돌았고, 내가 두꺼운 카펫을 계단에 깔아놓으면 그가 끌어올려 5분 만에 거실 한쪽에 놓았다.


간단하게 사용설명을 들은 후에, 모친은 기사에게 커피를 준비하겠다고 하니 그는 이미 마셨다며 사양하였다.


폐냉장고를 어깨에 들어 쓸쓸히 계단을 내려가는 모습을 보고, 모친은 냉장고에서 사과 3개를 꺼내 그에게 전해주라고 하셨다.


그리고 창문 넘어 한동안 트럭을 지켜보던 모친은 하루에도 몇 번이나 무거운 것을 지고 옮기는 그 기사가 안쓰럽다고 하셨다.


모친과 커피를 하면서 요즘 어려운 경제상황이지만 묵묵히 일하는 그런 분들이 주변에 많이 있어 아직 삶은 아름답고 희망적이라고 말씀드리니 미소를 지으셨다.


그런데 최근 중국발 코로나 바이러스 문제로 전 세계가 공포에 떨고 있고, 특히 사람 접촉이 많은 관광, 숙박, 음식업종이 어렵다고 한다.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바쁘게 살아가는, 인상 좋은 설치기사의  튼튼한 양어깨가 이번 사태로 축 늘어질까 심히 걱정된다.


글쓴이 서치펌 싱크탱크 대표 이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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