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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규선 Sep 13. 2021

동대문 DDP에서


장모님의 고관절 수술로 인한 후유증으로 하루가 멀다 하게 수원 처갓댁을 방문하는 아내가 모처럼 시간이 났다.


춥고, 비도 추적추적 오고 있어 선뜻 외출하기에 무리였지만, 주말에 그냥 소파에 누워 TV만 보자니 아쉬워 아내에게 오랜만에 광장시장에서 마약김밥을  먹고 동대문 DDP의 빛 축제를 보러 가자고 했다.


다들 경기가 어렵다며 아우성이지만 불야성인 광장시장은 예외였고, 좁은 통로는 제대로 걸을 수 없을 정도로 인산인해였다.


TV 인기 프로그램인 '한국은 처음이지'에서 우리말이 유창한 외국인이 자기 친구들에게 광장시장을 소개하며 이곳은 먹을 것이 많아 조금씩 맛보는 것이 좋다는 얘기가 떠올랐다.


그래서 우리는 늦은 점심을 한 뒤여서 단골 칼국수집에서 칼 만둣국 한 그릇을, 그리고 마약김밥과 씨앗호떡, 순희네 빈대떡 하나를 사서 반씩 나눠 먹었다.


말하자면 4곳을 돌아다니며 골고루 먹는 재미가 쏠쏠했고, 가성비는 단연 최고였다.


더구나 우리는 처음 들으면 무시무시한 마약김밥을 외국인에게 영어로 어떻게 설명하면 제대로 이해할까 생각하니 웃음이 저절로 나왔다.


광장시장을 나오니 중국 관광객을 기다리는 버스가 몇 대 있어 왜 이곳이 서울에서 가장 핫하고 인기 있는 명소인지 다시 실감할 수 있었다.


오늘의 하이라이트는 동대문 DDP에서 열리는 빛 축제여서 두산타워에서 옷 구경을 하면서 몸을 녹이다가 7시에 맞춰 공연장으로 갔다.


처음 동대문 DDP를 만들었을 때, 주변 건물과 어울리지 못하고, 한국의 전통적인 아름다움을 살리지 못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그런데 비현실적이고 추상적인 구조 때문에 오히려 신선한 감동을 주어 지금은 신비롭고 현대적인 명소로 각광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빛 축제는 15분간 서울과 동대문의 과거, 그리고  현재와 미래를 DDP의 은빛 굴곡진 외관에 화려한 빛과 영상, 음악으로 결합한 환상적인 조명쇼였다.


마치 3D 체험공간에 들어간 듯 넋을 놓고 구경하던 우리 부부는 선택받은 손님이었고, 공연이 끝나면 즉시 수 천명의 관중과 함께 DDP우주선을 타고 지구를 떠날 것 같았다.


아무튼 꿈꾸고(Dream), 만들고(Design), 누린다(Play)는 뜻을 가지고 있는 DDP(동대문 디자인 플라자)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우리는 길 건너 분위기 좋은 스타벅스 2층에서 아메리카노와 케이크를 먹으며 부모님 건강부터 최근 부동산 이슈까지 다양한 얘기를 나눴다.


은은하고 감미로운 음악, 부드러운 커피 향기, 그리고 집 보다 더 따뜻하고 세련된 분위기에 도취되어 얘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밤 10시가 되었다.


지난번 내 생일 선물로 ROTC 동기인 S박사가 보내준 콩다방 쿠폰 덕분에 겨울밤 아내와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멀리 동대문 DDP를 쳐다보며 아내와 팔짱을 끼고 걸으니, S박사가 즐겨 부르는 이태리 칸초네 '산타루치아'가 들리는 듯하다.


''창공에 빛난 별 물 위에 어리어

바람은 고요히 불어오누나


창공에 빛난 별 물 위에 어리어

바람은 고요히 불어오누나


내 배는 살같이 바다를 지난다

산타루치아 산타루치아''


글쓴이  서치펌 싱크탱크 대표 이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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