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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규선 Sep 13. 2021

자전거 여행


어제 친구 아들 결혼식에서 자전거 얘기가 나와서

베란다에 방치해 두었던 자전거를 무려 1년 반 만에 꺼내 닦다가 과거에 쓴 글이 생각나서 올립니다.


~~~~~~~~~


지난 주말 집에서 그냥 무료하게 보내는 것 같아 옆동네에 사는 친구 L에게 자전거 여행을 가자고 했더니 즉시 OK였다.


점심을 먹은 후에 만난 그는 프로 사이클 선수처럼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벽하게 갖추고 약속된 장소에 미리 와 있었다.


나의 행색을 위아래로 쳐다보던 그가 나에게  “쌀 배달 나왔냐?” 하며 크게 웃었다.


몇 주 전에 그와 자전거를 같이 타며 천천히 올림픽공원을 돌았고, 이번이 2번째 자전거 여행이었는데도 인사말이 지난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는 그 사이에 수십 만원을 들여 제법 성능이 좋은 자전거로 바꾸었는데, 나는 지난번 내 자전거보다는 상태가 비교적 양호한, 아들이 타는 자전거를 끌고 나왔다.


아무튼 나는 5월의 싱그러운 바람과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한강을 달리고 싶어 강변으로 갔다.


잠실 아파트를 나와 우리는 10여 분만에 천호대교 밑에 도착했는데, L는 대뜸 과천으로 가자고 하였다.


얼마 전에 그는 혼자서 과천을 간 후 잠실로 돌아와, 다시 분당을 거쳐 수지까지 왕복 170km가 넘게 자전거를 타서 엉덩이가 아파 혼이 났다며 은근히 체력도 과시하였다.


그런데 아무리 온 힘을 다해 내가 그를 쫓아가더라도 그는 수십 미터 앞서 있었고, 나는 과천은커녕 양재천도 못가 체력이 다할 것 같았다.


주말마다 열리는, 종합운동장 인근 노상 자전거점에 들려 자전거 바퀴에 공기를 넣은 후, 안장을 높게 세우니 힘이 덜 들었어 좋았다.


양재천과 탄천이 만나는 삼거리에서 나는 수년 전에 아들과 가락농수산물시장 방향으로 간 적이 있으나, 양재천에서 도곡동, 과천으로 빠지는 자전거 길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맑은 공기, 졸졸 흐르는 시냇물, 푸른 수풀, 그리고 흰구름이 두둥실 흐르는 파란 하늘…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었다.


날씨가 좋아 많은 사람들이 형형색색 복장을 갖춰 입고  나왔고, 수백 대의 자전거 행렬은 말 그대로 장관이었다.


최근에 서울시에서 대규모로 자전거 축제를 하여 붐을 이루었고, 친환경에다 건강을 위한다며 너도 나도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 행열에 끼어들어 열기가 대단했다.


계속 앞만 주시하다 보니 뒷목이 뻐근했고, 숨이 목까지 찼으며, 그리고 다리는 바늘도 못 들어갈 정도로 단단해졌다.


조금 쉬려고 하면 L은 과천에 다 왔다고 하여, 나는 지친 몸이지만 계속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웬 고생인가! 자전거 여행도 아니고, 사이클 경주하러 나왔나!


과천 중앙공원까지 바닥에 쓰인 거리 표시 4km, 2km, 1Km, 그리고 500m, … 점점 가까워지는 표시를 보며 젖 먹던 힘까지 내며 달렸다.


드디어 우리들의 종착지 과천 중앙공원에 도착했다.


화장실 다녀오고, 물 먹고, 몸을 추스르며 휴식한 시간은 고작 10여분 남짓.


겨우 반환점을 돌았고, 갈 길은 먼데 내 몸은 천근만근이었다.


다시 집을 향하여 몇 km 갔을까, L은 전화를 받더니 손님이 와서 4시까지는 집에 들어가야 한다며 나를 재촉하였다.


파란 하늘을 쳐다보고, 이름 모를 꽃과 나무를 구경하며, 천천히 가려고 했는데… 이게 뭔가!


바닥난 체력과 쌀 배달 자전거, 그리고 유유자적하려는 정신으로는 약속시간을 지키려는 그를 도저히 따라갈 수 없어 수십 미터 앞서 간 그에게 전화를 걸어 먼저 가라고 하였다.


그러자 그는 나중에 연락하겠다며 떠났고,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시원한 그늘에 풀썩 주저앉았다.


“진작에 이럴 것을…”


허리띠를 풀고, 갈증이 난 목을 축이고 나니, 이제야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데이트하는 청춘 남녀, 아기를 유모차에 싣고 돌아다니는 젊은 부부, 그리고 아이들이 시냇물에 돌을 던지며 웃고 떠드는 모습들….


요즈음 다들 힘들고 어렵다고 하는데, 이곳에 오니 낭만도 있어 제법 사람 사는 냄새가 났다!


20여분 쉬었을까 지친 몸을 달래며, 나는 다시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잠실에서 천호대교까지, 그리고 잠실- 종합운동장- 양재천- 과천- 양재천- 잠실까지 무려 45km, 내 평생 자전거를 타고 가장 먼 거리를, 불편한 안장으로 달렸으니 얼마나 힘들었나!


5시쯤 집에 도착하자마자, 따듯한 물에 목욕을 한 후, 딸아이에게 끊어질 듯한 허리를 꾹꾹 눌러 밟으라 하였고, 피곤하여 잠을 잤다.


깨어나 거울을 보니 선탠을 안 해 따가운 햇빛에 얼굴은 빨갛게 탔고, 금방 몸살 날 것 같아 아스피린을 복용했다.


다음 날 아침 피로는 거의 회복되었지만, 계단을 오를 때 묵직해서 마치 로봇의 외다리 같았다!


저녁때, L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제 어땠냐? 다음에는 분당을 거쳐 수지로 가자~!”


글쓴이  서치펌 싱크탱크 대표 이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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