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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규선 Sep 13. 2021

안산 둘레길


''오늘 코스가 좋았고, 날씨도 청명해서 산보하기에 최고였어!''


무려 10년 만에 동참한, 일산에 사는 J가 헤어지면서 나에게 건넨 인사말이었다.


생각해 보면, J는 오랜 기간 경기도에서 자원봉사 대장을 맡아 대학 동기들의 등산모임에 오고 싶었지만 그때마다 일이 있어 아쉬웠다고 한다.


그런데 이번 서울 안산 둘레길은 처음이었고, 친구들과 마냥 웃으며 즐겁고 건강한 시간을 보내 좋았다는 얘기는 그냥 인사치레가 아니었다.


나는 사전에 동행자들의 체력과 성향을 고려해서 코스를 정하고, 걷는 시간과 휴식시간을 조절하며, 중간중간 관광가이드 인양 중요 장소에 대해 양념을 쳐가며 설명하고, 포토존마다 어김없이 추억의 기념사진을 찍으며, 식당과 카페까지 확인하며 산악대장으로서 모두 만족하도록 노력했다.


내가 경험한 코스 중에서 수년간 20여 차례 가보았고, 지하철에서 가까워 접근성이 우수하며, 특히 체력 부담이 거의 없어 누구에게나 우선해 추천하는 곳이 서울 서대문에 있는 안산 둘레길이다.


아침 10시 독립문역에는 3.1 운동 100주년 기념 순국선열 선양대회 및 한일 합동위령제로 이미 수 백명의 많은 사람들이 모여 북적였다.


일본인 가수가 기타를 치며 참회하는 듯이 구슬프게 노래하는 소리를 들으며, 우리는 서대문 형무소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파른 계단을 지나 언덕길에 오르니 인왕산과 연결되는 하늘다리가 있었고, 벤치에 앉아 잠시 숨을 고른 후에 안산 둘레길로 합류했다.


심한 목감기에도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나왔다는, 제법 큰 사업을 하고 있는 Y는 한 달에 반은 골프를 했는데 어깨에 염증이 있어 최근에 등산에 취미를 붙인 친구였다.


그는 지난 8월 말 처음으로 남산 둘레길에 갔던 것이 너무 좋아서, 그다음 주에 혼자서 그 길을 또 걸었다고 고백했다.


그래서 그런지 그는 오늘도 30분 먼저 독립문역에 도착했고, 꼬불꼬불 이어진 둘레길을 앞장서서 마치 우리 일행을 실은 꼬마기차 기관사 같았다.


사계절 안산을 오른 나는 봄에는 꽃이 활짝 피고, 여름이면 깊은 설악산 속에 온 것같이 수풀이 울창하며, 아직 이르지만 늦가을에는 단풍으로 붉게 물든 모습을 보며 걷는 것이 정취가 있다며 안산사랑 홍보대사처럼 얘기했다.


우리는 서대문구청 인근 숲 속에 있는 넓은 마루에 걸터앉아 가져온 간식을 먹었고,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눴다.


잠시 후에, 안산 둘레길의 명소인 소나무길과 메타세쿼이아 길로 들어가 기념사진을 찍었고, 서울시내 한복판에 이렇게 멋진 장소가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잊지 않았다.


나는 이곳 둘레길도 좋지만, 그다지 높지 않은, 봉수대가 있는 안산 정상을 오랜만에 정복하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하였다.


이에 다소 힘들어하는 친구도 있었지만, 올라가 보니 시원한 바람이 땀을 식혀주었고, 서울시내를 360도 내려다볼 수 있는 환상적인 전망에 매료되어 정말 좋다며 엄지 척하였다.


우리는 1884년 갑신정변의 주요 인물이었던 김옥균, 서광범, 박영효 등과 교류하며 개화사상의 전개와 보급에 일익을 담당했던, 태고종의 총본산이며 한글학회 창립 지인 봉원사로 들어갔다.


불교신자인 J는 그곳에서 성불하며 합장하였고, 우리는 수많은 연꽃을 잠시 바라본 후에, 서울에 이런 곳도 있나 의문이 들 정도로 깔끔하고 한적한 마을을 지나 이화여대 후문방향으로 내려왔다.


가성비 좋은 할리우드에서 식사를 한 후에, 세련된 분위기인 그곳 1층 카페에서 오랜 기간 명리학에 심취한  희희 도사 K와 J를 통해 각자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내다보는 점괘를 봤다.


나는 사주는 믿지 않아 재미 삼아 보았는데, 비교적 맞는 것 같았고, 말년 운세가 좋다고 하여 기분은 무척 좋았다.


학창 시절 금남의 지역이었던, 이화여대 캠퍼스를 작년에 이어 오늘도 가로질러 걸어보니 낭만이 가득했고,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광장처럼 시원하게 펼쳐진 정문 앞 캠퍼스는 학생들보다 구경온 동남아시아 관광객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는데, 그들은 가는 곳마다 다양한 포즈를 취하며 인증샷을 하는 모습이 재미있었다.


오늘 안산 둘레길 7km 코스를 전부 돌지는 않았지만 정상을 정복했고, 봉원사와 이화여대 캠퍼스를 걸었으며, 카페에 앉아 점괘로 남은 인생을 계획하며 스트레스를 풀었던 즐거운 하루였다.


아프리카 돼지열병 때문에 경기북부 연천에 가면 살처분을 당한다고 익살을 부린, 다소 키가 작고 통통한 Y가 남산에 연거푸 갔듯이 다음 주에도 혼자서 안산 둘레길을 걸을까?


서울은 연천에서 멀고, 집에서 기르는 애완용 돼지는 해당되지 않으므로 그가 또 안산에 가리라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글쓴이  서치펌 싱크탱크 대표 이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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