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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규선 Sep 13. 2021

광릉수목원 둘레길을 아시나요?


20년 전쯤 되었을까, 광릉은 평생 처음 가본 넓고 아름다운 수목원이었고, 그곳에서 어린 우리 아이들을 데리고 호랑이를 본 기억이 전부였다.


그런데 우연히 카톡에 친구가 광릉수목원 둘레길이 최근에 오픈되었다는 기사를 올려, 그렇지 않아도 오랜만에 가보고 싶었고, 포천에서 자연과 벗하는 교회를 다니고 있는 그 친구도 볼 겸 해서 주말에 친구들과 광릉수목원과 둘레길을 다녀왔다.


광릉수목원은 잠실에서 포천 고속도로를 이용하면 40분 이면 도착해, 주말이면 항상 막히는 춘천고속도로와는 차원이 달랐다.


주말에는 3천 명 한정이라 미리 예약해서 우리 친구들은 정문 옆 넓은 다리를 지나 오른쪽으로 향했다.


이미 그곳에는 가족과 등산 동호회원 수십 명이 앞서니 뒤서니 했고, 그들 일부는 해설사를 따라 천천히 수목원을 둘러보았다.


우리는 천연습지 같은 수생식물원을 거쳐, 난대식물 온실에 도착했는데, 입구에서 부는 뜨거운 열기에 한증막 같아서 들어가지 않았다.


산림박물관에서는 기기묘묘한 팽나무를 보았고, 잠시 그늘에서 간식을 먹으며 휴식을 취했다.


우리는 열대식물자원연구센터를 멀리 쳐다본 후, 언덕을 오르는 숲길로 들어서자 얼음골처럼 갑자기 찬 바람이 불었다.


와우!  역시 500년 넘게 잘 가꾸어놓은 광릉숲은 조선의 정기를 받아 그런지 신비로웠고, 한발 한발 걸으며 느끼는 감정은 남달랐다.


햇볕으로 뜨거워진 신작로보다 이 숲길은 적어도 10도 이상 시원했고, 피톤치드를 뿜은 듯 특유의 향기가 가던 길을 멈추게 하였다.


임도 고개를 지나 육림호를 옆에 끼고 다시 숲길을 들어서니 마치 30미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자이언트 나무들이 웅장하게 우리를 맞이하였고, 그곳에는 야외 휴게광장도 있어 등산객들이 삼삼오오 탁자에 둘러앉아 쉬고 있었다.


전국에 수십 곳의 유명수 목원 입장료의 10분 1 가격인 단돈 천 원으로 이런 호사를 누리다니 가성비는 단연 최고였다.


우리는 정문 옆에 두툼한 매트로 포장된 샛길을 따라 봉선사까지 3km 데크로 연결된, 이번에 새로 만든 수목원 둘레길에 들어섰다.


가까이에는 꼬마 아이 손바닥만 한 물고기가 노니는 맑은 하천이 있었고, 그 뒤로 광릉수목원의 푸른 숲이 병풍처럼 시원하게 펼쳐있었다.


중간중간에 커다란 액자가 있는 포토존마다 사람들이 각자 다양한 폼을 잡으며 사진을 찍었고, 우리도 액자가 꽉 찰 듯이 나란히 앉아 기념사진을 찍었다.


 나는 언제 한가할 때 내 좋은 사람과 다시 이곳에 와서 가만히 벤치에 걸터앉아 책을 읽으며 쉬고 싶다.


요즘같이 더운 날에는 시원한 그늘에 앉아 파란 하늘에 두리둥실 떠다니는 뭉게구름을 쳐다보고, 가만히 귀 기울여 바람에 이는 작은 나뭇잎 소리와 예쁜 새소리를 들으리라!



비가 오는 날이면 그냥 빗소리를 들으며 벤치에 앉아 작가 인양 글을 써보기도 하고, 눈이 오면 실연당한 사람처럼 지나가는 차들을 방관하며 하얀 눈길을 걷는 것도 낭만이 있을 것이다.


배가 고프다고 재촉하는 Y교수의 성화에 시계를 보니 점심시간이 다되어 최종 도착지인 봉선사는 다음으로 미루고 중간에 되돌아왔다.


오늘 광릉수목원의 숲길도 좋았지만, 맑은 개울물에 거울처럼 비친 하얀 구름을 힐긋 쳐다보고, 신호등 없는 둘레길을 오래 묵은 친구들과 기차놀이하듯 일렬로 걷는 그 기분은 최고였다.


글쓴이  서치펌 싱크탱크 대표 이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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