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규선 Sep 13. 2021

여름 피서

이곳에는 계곡에 물이 없습니다.

집에서 한 시간 넘게 차를 몰고 와서, 축령산 휴양림에 들어갔을 때 뚱뚱한 매표소 직원이 우리에게 말한 첫마디였다.


아뿔싸! 


그러면 혹시 휴양림은 이용 가능한가요?

예약이 꽉 차서 불가능합니다.


얼마 전에 제주도와 남부지방에는 비가 제법 왔고, 매년 여름이면 수 차례 피서 왔던 축령산에 비가 오지 않아 되돌아간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옥수수며 과일 등 먹을 것을 바리바리 싸왔고, 최근에 산 파라솔이며 캠핑의자까지 죄다 싣고 왔는데, 차가운 축령산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냉커피를 마시며, 유유자적하려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전혀 대안을 마련하지 않아 가족과 함께 피서할 수 있는 가까운 곳이 어디일까 지도를 보니 인근에 광릉수목원이 있었다.


도상거리는 지척이지지만 돌아가야 하기에 1시간이 걸리고, 생각해보니 다음 주 광릉수목원 둘레길 모임이 잡혀있었다.


그럼 이 참에 사전 예행연습을 해볼까 하다가, 얼마 전에 오픈한 미사지구 코스트코에 들려 생필품을 사자는 아내의 얘기에 커다란 수박을 샀고, 새로 타이어까지 바꿔 끼우고는, 자연과 어우러진 멋진 신도시 미사지구를 한 바퀴 돌았다.


오늘 서울이 80년 만에 최고 기온인 36.1도가 되었다.


내차의 계기판은 이미 39도를 가리켰고, 40도까지 올라가려나 힐끔힐끔 쳐다보니 어느새 집에 도착했다.


집안일이 있어 며칠 전에 포기한 대학 등산모임을 오늘 강행했으면 어떠했을까?


~~~~~


열흘 넘게 친구들과 스페인 여행을 다녀온 아들이 잠에서 깨어나더니, 무더우니 한강에 나가 산보하자고 하였다.


그렇지 않아도 집에서 3분 도보거리에 있고, 밥을 먹다가 고개만 살짝 돌려도 보이는 한강에 가본 지 언제였던가!


가족과 함께 간 지 몇 년이 되었고, 아내와 둘이서 바람을 쐴 겸해서 간 것도 1년에 2~3번이 고작이었다.


오랜만에 가본 한강은 그 시간만큼 세련되게 변했고, 잠실 지명에 걸맞게 뽕밭으로 수풀을 이루었다.


바람까지 시원하게 불어 수많은 사람들이 좋은 자리는 모조리 깔고 앉아 쉬었고, 일부 젊은이들이 맥주를 마시며 대화하는 모습이 정겨워 보였다.


가까이 잠실대교의 화려한 야경은 눈을 즐겁게 하였고, 멀리 남산타워와 뚝섬의 불빛도 컴컴한 밤하늘에 조화를 이뤄 몇 시간이고 마냥 쳐다봐도 지루하지 않았을 것 같았다.


우리는 벤치에 앉아 수 없이 지나가는 자전거 행렬을 무심히 쳐다보며, 아들의 여행 얘기, 인생 얘기를 함께 나눴다.


단속을 강화해서 그런지 과거의 볼썽사나운 텐트 무리가 없었고, 도로나 잔디밭 위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졌던 전단지도 보기 드물었지만 사람들로 시끄러운 곳을 벗어나 11시쯤 집으로 향했다.


잠실대교를 가로지르니 마치 어렸을 때 시골집 마실 가듯 조용해 우리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서울의 아름다운 밤을 즐겼다.


올여름에는 주말마다 한강고수부지에 돗자리를 넓게 깔고, 수박과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밤하늘의 별들을 이불 삼아 피서해야겠다.


글쓴이  서치펌 싱크탱크 대표 이규선

작가의 이전글 중학교 4인방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