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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규선 Sep 13. 2021

내가 살던 상도동 달동네를 생각하며


얼마 전에 가족과 함께 모처럼 인천을 여행했다.


인천 하면 송도유원지, 청라신도시, 차이나타운 등은 몇 번 가봤기에 이번에는 아이들 교육을 위해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을 방문했다.


그곳은 1960~70년대 달동네 서민의 생활상을 테마로 한 체험중심의 박물관인데, 인천사람들에게는 정겨운 고향 같은 곳이라고 한다.


책과 TV로 보고, 말로만 들어왔던, 부모의 어린 시절 생활하던 모습을 우리 아이들은 파주 헤이리 근현대사 박물관에서 본 적이 있는데 이번에 오랜만에 직접 체험할 수 있어 좋았다.


이번 달동네 박물관은 연륜 있는 가이드의 생생한 설명으로 하나하나 보고 만지며 느낄 수 있어서 파주 헤이리에서 동선을 따라 눈으로만 봤던 느낌과는 차원이 달랐다.


우리는 과거와 똑같이 재현한 비좁은 마루에 나란히 앉았고, 연탄을 갈고 번개탄으로 꺼진 불을 피우는 방법을 알았으며, 물동이를 양어깨에 메고 산동네에 오르는 이유, 그리고 남녀 공동화장실의 문제점 등을 눈으로 보고 확인했다.


어린 시절에 가난했던 생활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어서 나는 중간에 아이들에게 그때의 에피소드를 양념 삼아 얘기하니 더욱 실감이 나는 모양이었다.


우리 어린 시절은 대체로 먹고살기 힘들었고, 어떻게 그 힘든 시절을 견뎌냈는지 지금도 생각하면 대견하다.


내가 청계천 옆 을지로 입구 판잣집에 살았을 때, 지붕에 쥐들이 왔다 갔다 하는 소리에 신경이 쓰였고, 비가 오면 천장에서 물이 떨어져 세숫대야를 방 한가운데 놓고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한 때가 초등학교 3, 4학년 때 시절이었다.


직장 초년 시절에 북아현동 3층 양옥집에 살다가 부친의 사업실패로 상도동 달동네로 이사했을 때, 지금 미국에서 목회를 하고 있는 친구 L이 큰길에서 집까지 100미터가 넘는 좁은 골목길을 오르내리며 리어카로 이삿짐을 날라주었을 때 그 고마움과 나의 참담함이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그때 빚쟁이가 방 두 칸인 우리 집을 수시로 찾아왔고, 한때는 차압까지 당해 TV와 냉장고에 빨간딱지가 붙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에 살던 10년 동안 나와 내 동생은 이해심 많고, 생활력이 강한, 착한 여자들을 만나 결혼했다.


년 전에 내가 살던 상도동 달동네를 거의 30년 만에 처음 가봤는데 구불구불한 골목길은 그대로였고, 허름한 옛집은 무너질 듯 누추하고, 황량해 보였다.


동생에게 그 얘기를 하니 그 후에 제수씨와 다녀왔는데, 그 시절을 어떻게 보냈는지 감회가 새롭다고 하였다.


얼마 전에 모친께 상도동에 한번 가보시는 것은 어떠냐고 물으니 마음 아팠던 현장을 다시 봐서 좋을 것이 없다고 하여 모친의 불편했던 속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과거는 경우에 따라 아름답고, 한편 추하기도 하나, 그것을 어떻게 평가하고 대응하느냐에 따라 현재와 미래가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 아이들은 내 어릴 적보다는 확실히 물질적으로 풍족한 생활을 하고 있으나, 정신적으로 나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어 안타깝다.


이번에 인천의 자유공원, 차이나타운, 신포시장, 송월동 동화마을 등을 방문했지만, 아이들은 수도국산 달동네박물관에서 기대 이상으로 많은 것을 경험해 좋았다고 한다.


단돈 1000원으로 우리 같은 기성세대에게는 향수를, 신세대에게는 기성세대를 이해할 수 있는 교육의 현장인 달동네 박물관을 즐길 수 있어 좋았고, 그곳이 인천의 명소가 되기를 기대한다.


글쓴이  서치펌 싱크탱크 대표 이규선

내가 살던 상도동 달동네 집

수도국산 달동네박물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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