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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규선 Sep 13. 2021

중국인의 거리에서


학창 시절부터 우리 민족은 단군의 자손이며, 단일민족이라는 얘기를 수 없이 듣고 자랐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다문화시대를 운운하며 TV에서 피부색이 다른 사람들이 유창한 우리말로 얘기하였고, 길거리에서도 그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자료에 의하면, 1990년대 초부터 외국인이 본격적으로 들어와  2018년 12월 말 현재 236만 명으로 인구의 4.6%를 차지하고, 이는 대구광역시 인구수와 비슷하다고 한다.


그중 중국인이 거의 반을 차지하는데 주로 제조나 서비스 분야의 3D업종에 종사하고 있다.


북이 고향인 고모부가 살아계셨을 때, 중국에 살고 있는 사촌(조선족) 몇 사람을 20여 년 전에  초청했었다.


그때 그들은 식당, 공사판 등에서 허드렛일을 하여 제법 짭짤한 수입을 거둬 중국에 돌아가 집을 샀거나 사업 밑천을 마련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년 전에 안산역, 수원역 뒷골목을 지나다가 온통 붉은 간판과 조형물을 보고 여기가 어디인가 하고 놀란 적이 있었다.


달 전에 모친을 차로 모시고, 일부러 중국인들이 많이 산다는 가리봉동, 대림동을 갔다.


그때 차창 밖으로 보이는 동네는 한두 개 한글 간판을 제외하면 시뻘건 간판으로 도배한 중국인 거리였고, 남루한 복장과 헤어스타일을 봐도 하루하루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을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모친은 평생 처음 본다며, 낯설어서 그런지 그냥 다른 곳으로 가자고 하셨다.


어젯밤 나는 혼자서 서울에서 중국인들이 가장 많이 살고 있다는 대림동에 갔다.


말하자면, 낮에 차창 밖에서 보는 중국인 거리 풍경과 밤에 하나하나 직접 보고, 느끼는 기분은 다를 것이라 생각해서 용기(?)를 낸 것이었다.


대림역 12번 출구를 나오니, 좁은 골목 양쪽으로 다닥다닥 붙어있는 붉은 간판이 나를 위축시켰고, 지나가는 사람들은 알아들을 수 없는 중국어로 지껄였다.


그들은 함부로 침을 뱉었고, 담배를 피우다가 불도 끄지 않은 채 땅바닥에 던졌으며, 삼삼오오 서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빤히 쳐다보며 얘기하였다.


이곳은 하루에도 사건, 사고로 시끄러울 날이 없는 중국인의 거리였고, 문화의 거리로 조성된 인천의 차이나타운과는 확실히 구별되었다.


사람 사는 곳은 다 그렇겠지 하고 자위하지만, 나는 중국 북경시내 어느 골목을 걷는 외국인 같아 재킷 단추를 잠그고, 긴장의 끈을 풀지 않고 천천히 걸었다.


좌판에 삶은 계란을 팔고 있는 할머니께 ' 왜 계란이 녹색이냐' 고 물었더니, 중국말로 쏼라쏼라하였다.


또한 일부 가게는 손바닥만 한 큰 만두와 찐빵, 순대 등을 미세먼지에도 불구하고 덮개 없이 팔고 있으며, 고수 같은 특이한 냄새가 주위를 진동하였다.


그때 단톡방에 이곳 사진과 글을 올리니, '왜 밤인데 무서운 동네에 갔느냐, 몸조심해라'라는 답글이 즉시 올라왔다.


날이 점점 어두워지자, 퇴근하는 중국인들이 식당에서 식사하거나, 대림 중앙시장에서 장을 보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70세는 되어 보이는 아저씨가 상점을 이곳저곳을 둘러보다가, 밖에서 슈퍼마켓을 구경하고 있는 내 앞으로 어느새 다가왔다.


그는 허리 높이의 과일상자에 쌓여있는 튼실한 토마토를 고르는 척하다가, 가져온 빵 봉지에 슬그머니 집어넣었다.


그렇지 않아도, 아까부터 그가 가는 곳마다 물건을 만지작거리는 것이 수상했는데, 내가 바로 뒤에서 쳐다보고 있는데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훔쳤고, 몇 발자국 가다가 뒤돌아 나를 쳐다보았다.


그때 나는 슈퍼 주인에게 고발할까 하다가, 순간 섬뜩한 생각이 나서 멈칫하였다.


내 평생 현장에서 도둑질하는 것을 처음 보았고, 이곳이 정말 살벌한 곳이구나 하는 생각에 서둘러 그곳을 벗어났다.


달밤에 체조하는 무리를 멀리서 쳐다본 후에, 눈이 부시도록 환한 대림역 지하철 안으로 들어오니 이곳이 안전지대고, 내가 사는 고국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


저출산, 고령화, 고학력화에 따른 일손부족을 메꾸려는 불가피한 조치로 외국인을 받아들이고, 다문화 가정도 생기지만, 범죄의 사각지대가 점점 넓어지면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글쓴이  서치펌 싱크탱크 대표 이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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