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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규선 Sep 13. 2021

전화를 해약하면서


돌이켜보면, 근 30년 이상 오랫동안 우리 집을 대표하며, 마치 한가족처럼 살았던 유선전화기를 없앴다.


어느 집이나 마찬가지겠지만 10여 년 전부터 가족 모두 핸드폰이 있어 집에서 유선전화를 쓸 일이 없었다.


그래서 얼마 전에 한국통신에 연락하니 안내원이 해약 사유를 물었고, 해약하면 다시는 그 전화번호를 사용할 수 없다고 엄포(?)를 놓아 잠시 망설였지만, 이미 가족과 결정한 것이니 그대로 진행하였다.


가난했던 내 어린 시절에 집에 전화가 없었다.


그 당시 백색전화와 청색전화가 있었는데, 전화번호가 바뀌지 않는 백색전화는 사고팔 수 있는 개인전화였고, 청색전화는 전화국 소유여서 이사할 때 보증금을 받고 반납하였다.


백색이든 청색이든 전화가 설치된 집은 잘 사는 집이었다.


전신전화국은 장비 회선 부족으로 수요를 따르지 못해 전화번호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였다.


처음에는 전화 한대가 몇십만 원 하더니, 나중에 외우기 좋은 백색전화 번호는 200~300만 원까지 하여 그 당시 웬만한 집 한 채 값이었다.


전화가 없다 보니 세 들어 사는 집은 급한 경우를 대비해서 전화가 있는, 주인집을 비상연락처로 등록해 놓았다.


그래서 00이네 전화 왔다고 큰 소리라도 들리면 밥을 먹다 말고 쏜살같이 뛰어가곤 했다.


그때마다 주인집에 미안한 표정을 지었고, 통화가 끝나면 감사하다는 인사를 잊지 않았다.


또한 그 당시 다방은 개인사업자들의 아지트 겸 연락사무소였는데, 마담이 '김 사장님! 전화 왔어요!'라고 소리치면 김 씨 성을 가진 사람은 자기 전화인 줄 알고 다들 일어나는 등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었다.


옛날 전화기는 손가락으로 번호를 돌려 통화하는 아날로그식이어서 잘못 돌리면 처음부터 다시 돌려야 했는데 언제부터인가 터치식으로 바뀌어 얼마나 편리했던가!


더구나 지금의 코드리스 전화기는 집안 어디든지 들고 다니며 통화할 수 있지만, 코드가 있는 옛날 전화기는 움직일 수 없어 접근성이 좋은 거실에 장식품처럼 놓여 있었다.


그래서 전화가 오면, 먼저 받은 사람이 바꿔주면서 '예의 바르고 목소리가 좋은데 누구냐?'라고 물어 몰래 비밀통화를 하는 데 눈치가 보였다.


따르릉!  따르릉!


기상나팔 소리같이 우렁차서 온 집안을 깨웠던, 그 정겨웠던 전화벨 소리는 우리 집에서 더 이상 들을 수 없다.


우리 가족 핸드폰 공동 번호로 뒷자리 4290만을 남긴 채 집전화기가 가고,  주변에 사람도 하나 둘 세월을 따라 내 곁을 떠나니 그 허전한 마음은 지울 수가 없다.


글쓴이  서치펌 싱크탱크 대표 이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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