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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규선 Sep 13. 2021

극한직업과 극한상태


어제저녁 아들과 강변 CGV에서 영화 '극한직업'을 봤다.


요즘 한창 인기가 있어 관객수가 1400만 명이 넘었는데, 나는 이 기회를 놓치면 요즘 영화에 무지하다는 소리를 듣거나, 혹시나 있을 대화에서 왕따 당할 것이 우려되어 보았다.


다들 유명한 인기 영화라고 얘기하여 내가 기껏 시간을 내어 보았더니 기대보다 못 미쳐 실망한 적이 있어 가능한 주변 얘기를 죄다 듣고 간 적이 많았다.


이번 극한직업 영화도 마찬가지였고, 이미 한차례 영화를 본 딸아이가 한번 더 보고 싶다고 하기에 서둘러 예약하였다.


어제는 점심때 대학 후배들과 잠실역에 있는, 유명 그룹사가 운영하는  A에서 식사를 하였다.


그곳은 내가 종종 가는 곳인데, 후배들과 즐겁게 식사한 후에 찬 것을 많이 먹어서 그런지 시간이 지나면서 가스가 차서 임산부 배가 되었다.


그들과 헤어진 뒤에, 트림이 나고 더부룩하여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화장실에 갔고, 조금 있으니 온몸이 바늘로 쑤시듯이 몸살이 나기 시작해 약국에 가서 타이레놀을 사 먹으니 조금 나은 것 같았다.


영화를 보기 전에 테크노마트에서 모처럼 아들과 저녁을 함께 하려 했지만, 식사는 커녕 가만히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체한 것일까, 아니면 장염일까?


나는 아들이 혼자 식사하는 모습을 볼 수 없을 정도여서 한쪽 벽에 기대어 눈을 감고 쉬었다.


그냥 집에 갈까 하다가, 딸아이를 설득해 예매한 것을 포기하고 갈 정도는 아니어서 참아가며 영화를 봤다.


극한직업은 강력계 형사들이 낮에는 치킨장사, 밤에는 잠복근무를 하면서 마약범들을 일망타진하는 영화였다.


'지금까지 이런 맛은 없었다. 갈비인가, 통닭인가?'


집에서 예고편을 살짝 봤을 때, 이 애드리브가 신선하고,  웃겨서 무척 기대했는데 그것이 다였고, 중간중간 능청스러운 대화에 살짝 웃음이 나왔지만 박장대소할 정도의 코미디 영화도 아니었다.


영화가 끝나고, 엘리베이터에서 70세는 되어 보이는 할머니들이 너무 재미있었다고 하여 어리둥절하였다.


옛날에 아이들은 낙엽 구르는  것만 보아도 웃음이 나오고, 하물며 나이 든 할머니들도 느꼈는데 나만 속세에 물이 들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부푼 배를 연실 쓰다듬으며 화장실 가려는 것을 참았고, 약발이 다해 쑤시는 몸을 애써 참아가며, 말하자면 내 몸이 '극한상태'에서 '극한직업'이라는 영화를 봤으니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나는 아들에게 영화를 본 느낌이 어떤지 물어봤다.


'일부러 웃기려고 만든 B급 코미디 영화네요'


아들도 내 생각과 다르지 않아 다행(?)이었고, 나는 어제, 오늘 대장 검사 전날처럼 화장실을 들락날락거리며 이 글을 쓰고 있다.


글쓴이   서치펌 싱크탱크 대표 이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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