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규선 Sep 13. 2021

애니로리


오늘 길을 걷다가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귀에 익은 옛 노래를 듣고 발을 멈추었다.


내가 학창 시절 즐겨 불렀던, 애틋하고 아름다운 노래, 스코틀랜드 민요 '애니로리'였다.


그 노래를 듣는 순간 나는 학창 시절로 돌아갔고, 숨죽인 듯 그 노래에 빠져 잠시도 움직일 수 없었다.


이 노래는 사관생도가 사랑하는 연인이 다른 남자와 결혼하여 그녀를 그리며 시를 썼고, 이것을 작곡가가 곡을 붙여 탄생한 슬픈 노래였다.


이를 고교시절에 학교에서는 '애니로리'로 불렀고, 교회에서는 '하늘 가는 밝은 길이'로 찬송하였다.


내가 광화문 S교회에 다닐 때, 남성중창단이 이 곡을 특송으로 가끔 불렀는데 그중 테너를 맡은 1년 후배 C가 생각난다.


그는 키가 작고, 조용한 성격이어서 마치 개그맨 윤택처럼 둥그런 곱슬머리가 아니라면 그다지 눈에 띄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 그와 나는 성가 연습이 끝난 후에 애니로리를 즐겨 불렀다.


새벽이슬 내려 빛나는 언덕은

그대 함께 언약 맺은 내 사랑의 고향

참사랑의 언약, 나 잊지 못하리

사랑하는 애니로리 내 맘속에 살겠네


누구나 첫사랑의 추억이나, 그에 못지않은 짝사랑의 아픔이 있을 것이다.


이 노래는 사랑했지만 떠나보내는 남자의 마음을 잘 그렸던 노래였고, 특히 학창 시절 순진했던 내 마음을 잘 표현했던 대표곡이었다.


어느 여름날 신앙심이 깊은 그를 따라 우리 성가대는 경기도 가평에 있는, 그의 아버지가 시무하는 개척교회도 방문하여 찬양하였다.


그가 군에 입대하여 그 후 연락이 끊겼지만, 25년 전에 그가 미국에 있다는 소식을 우연히 접하고 내가 미국에 출장 갔을 때 그와 통화할 수 있었다.


그는 오클랜드에 살며, 미국인 아내와 함께 태권도장을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그때 나는 그가 태권도 사범이라는 얘기를 처음 들었고, 더구나 그의 작은 체구에 몇 단인지 모르나 미국에서 태권도를 가르친다기에 더욱 놀랐다.


그 후 서로 바빠서 그에 대한 소식은 전혀 듣지 못했다.


오늘 애니로리를 수 없이 듣고 부르다 보니, 그가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 인터넷을 검색했다.


그는 미국 태권도 교육재단 홍보담당관을 했고, 아시아 태평양 태권도대회 때 미국 대표로 참석했으며, 최근에 오클랜드 한인축제 때 그의 원생들이 태권도 시범을 보일 때 영상으로 잠시 그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비록 세월의 흐름은 어쩔 수 없으나, 하얗게 눈이 쌓여있는 곱슬머리인 그의 얼굴은 크게 변하지 않아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수십 년 전에 헤어져 각자의 길을 가고 있지만, 고국도 아니고 이국만리에서 파란 눈의 여자와 살고 있는 그를 생각하니 도대체 인생이 무엇인가 새삼 되묻고 싶다.


그는 아득한 학창 시절에 나와 함께 목청 높혀 애니로리를 불렀던 것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을까!


글쓴이   서치펌 싱크탱크 대표 이규선

작가의 이전글 극한직업과 극한상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