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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모사 Dec 21. 2021

장롱캠핑러입니다만

서귀포 자연휴양림에 한번 가봤습니다


이 텐트로 말하자면 7년 전 개미지옥 같은 직구에 빠져있을 무렵, 자연스러운 색상과 미니멀한 2인용 사이즈가 내 심장을 강타했다. 며칠 동안 해외구매 사이트와 구글 번역을 오가던 차, 면세 한도 200달러 이하 199달러란 운명적인 가격에 최종적으로 내 소속이 됐다. 이전까지 캠핑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계곡물이 콸콸콸 쏟아지던 냇가에서 가족끼리 놀던 어렴풋한 기억이 전부지만 앞으로 텐트가 닳도록 하면 되지. 미국에서 집 앞마당에 도착하기까지 눈이 빠지게 기다리던 텐트는 과연 미국물 좀 먹었기로서니 내 눈엔 많고 많은 텐트 중 단연 최고였다.




텐트를 사고 나니 텐트만 있다고 캠핑을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필요한 게 왜 이리도 많은 건지 기본 중 기본에 속하는 매트, 침낭, 조명 등으로 한 차례 등골을 빼고 나서야 비로소 캠핑을 떠날 수 있었다. 한여름 텐트를 백팩에 이고 자전거 페달을 힘껏 밟아 그 새벽 노을캠핑장에서 별을 본 기억도, 주중 한산한 장태산 휴양림에서 숲향과 매미 소리를 자장가 삼아 눈 감았던 추억이 있다. 이렇게 공식적으로는 단 두 번. 그로부터 캠핑 장비는 장롱 속에서 깊이 잠들게 되었다.


마냥 모든 게 좋기만 한 계절이 오자, 하필 한창 휴일 없이 바쁠 때 날씨는 왜 이리도 좋고 도무지 떠나지 않고는 못 배기겠는 건지 몇 년 만에 캠핑 주기가 찾아왔다. 평소 뛸 일이 없는 마음도 마치 첫 캠핑처럼 들떴다. 장소는 스트레스를 완화시켜주는 피톤치드를 흠뻑 흡수할 목적으로 휴양림을 선택. 이날을 위해 배달 음식으로 연명하던 이전 캠핑에서 한층 진화하여 버너와 코펠도 장만했다.



서귀포자연휴양림은 입구에서부터 데크동까지 차를 타고 숲 속을 드라이브한다. 마치 사파리 같달까. 요지는 낭만적인 시작이라는 거다. 데크에 가져온 모든 짐을 날라 본격적으로 내 구역을 조성한다. 텐트를 더듬더듬 조립한 후 코펠과 버너를 살 때 큰맘 먹고 함께 주문한 리클라이징 의자도 첫 개시한다. 여기까지 한 것도 없어 보이지만, 한 시간이 훌쩍 지나 어둠이 빨리 찾아오는 숲 속은 전보다 낮아진 조도로 무거워진 분위기가 감돌았다. 밥을 먹고 온 게 무색할 정도로 몰려오는 허기에 물을 올린다.



메뉴는 점심, 저녁, 아침 모두 라면이다. 기껏 라면이라지만 야외에서 찬바람에 언 몸으로 후후 불어먹는 라면이란 아쉬울 게 없는 최고의 만찬이다. 스프를 넣고 끓이는 순간을 기점으로 공중에 퍼지는 치명적인 냄새에서부터 입안에서 춤추듯 탄력 있는 면발과 뜨끈하게 몸을 녹여주는 국물은, 캠핑에서 단 하나의 음식만 선택해야 한다면 바로 라면. 국물을 버리려면 개수대까지 걸어가야 하기 때문에 한 그릇을 모두 비우고 나니 노곤함이 쏟아진다. 무거워진 몸을 리클라이징 의자에 뉘인다.



금세 사방이 어두워진다. 혼자 캄캄한 숲에서 할 거라곤 일찍 잠드는 것 밖엔 없다. 깜빡 잊고 있었다. 밤이 찾아오면 이를 위해 만발의 대비를 한 것보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춥다는 걸. 준비한 침낭과 이불, 수면 양말로 무장했음에도 한기를 느껴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기어코 잠들겠다는 필사의 노력에 차 안과 텐트를 왔다 갔다 하다 뜬 눈으로 날이 샜다. 얄밉게도 밤새 데크 구역에는 코 고는 소리가 맴돌았다.


칠흑 같던 숲 속에 서서히 따사로운 볕이 들어서기 시작한다. 밤 사이 이슬을 머금고 농축된 숲 향이 싱그러워 폐부까지 깊게 들여 마신다. 인적 없는 데크길을 거닐며 여명을 맞이하는 광경은 마치 이 숲의 주인이 된 듯 귀한 호사였다. 바로 출근을 해야 하는 상황에 서둘러 철수를 마치고 회사로 향했다. 그리고 평소 같았으면 묵은 피로에 허덕였을 텐데 놀랍게도 하루 동안 피곤을 느끼지 못했다. 이게 바로 피톤치드의 효과인가.



코딱지만  원룸에 캠핑 장비가 웬말인지, 2  최소한의 짐을 가지고 이사를 준비했을  분명 빼야 하는  맞는데 포기할  없었다. 살면서 점점 늘어나는 짐들에 급기야 차에 텐트를 보관하는 상황이 되자, 종종 그때의 결정이 후회되곤 했었다. 하지만 그간의 과정은  하루를 위한 일이었던 거다. 언제일지 모를 훗날의 캠핑을 고대하며 캠핑 장비는 다시 장롱 속으로 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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