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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모사 Feb 04. 2022

알고 보니 자가격리가 체질

밀접접촉자의 명절격리


위기는 안도를 틈타 비롯된다. 끝없이 코로나 상황이 계속되고 있음에도 상대적으로 확진자가 저조한 지역이여서, 그동안 주위에 확진자가 없어서가 안전불감증의 기저가 됐을까.


3차 백신 접종 예정일, 사내 확진자 소식이 전해졌다. 당시 확진자와 함께 식사를 했던 밀접접촉자들은 PCR 검사를 하러 향했고, 그외 직원들은 점심시간 이후 검사를 하고 복귀하란 지시가 있었다. 확진자가 식사했던 식당에서 밥을 먹어도 괜찮단 말도 덧붙여. PCR 검사 후엔 자가격리가 필수라는 걸 알게 된 컨트롤타워는 보건소의 지침이 있을 때까지 다음 안내 절차를 보류했다. 퇴근 무렵이 돼서야 보건소에서 전 직원 대상 PCR 검사 권고가 내려졌다. 다음날 보건소에서 검사 후 하게 된 코로나 시대 사내 최초의 재택근무는 일이 바쁘지 않은 상황에서 사실상 휴식이었다. 내일부터 명절 연휴라 긴 휴가에 기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늦은 밤, 보건소의 연락이 있기까지는.


명절 자가격리는 좀 아니잖아요

담당자는 추가 확진자로 인해 내가 밀접접촉자가 됐다고 전했다. 자가격리 기간은 딱 명절 연휴 동안. 사내 최초 확진자 발생일 남겨진 직원과 “우리 이러다 명절에 자가격리하는 거 아니야?”라고 우스갯소리로 얘기했었는데, 심지어 그 직원은 다음날 명절을 쇠러 타 지역 방문이 예정되어 있었다. 나 역시 얼마 전 계획대로라면 본가로 향했겠지만 미루게 된 터였다. 그에 비하면 다행이었다.



확진자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예기치 않은 명절격리로 기분 좋을리 없던 상황에서 신속한 방역 당국의 체계적인 지원 시스템은 되려 나를 미안하게 했다. 금요일 - 늦은 밤 보건소의 자가격리 통보, 토요일 - 보건소의 위생물품 전달, 일요일 - 시청의 구호물품 전달. 남들 쉴 땐 나도 쉬어야 된다는 지론을 갖고 있는 나로서는 연휴와 밤낮 가리지 않는 서비스가 황송할 정도였다. 보답의 의미로 투철하게 하루 세 번 체온체크에 임했지만 PCR 검사 음성이자 저체온, 무증상 격리자인 내게 쓰이는 수고와 세금까지 미안함은 사라질 줄 몰랐다.



집순이에게 격리란 최고의 호사

가족과 함께 거주하고 있어 방 안에서 격리한 다른 직원에 비해 1인 가정의 격리는 수월했다. 좁은 방 안에서 격리한 직원은 심리적인 불안감도 동반했다고 하나, 좁은 집 안에서 난 여느 때의 주말과 다를 바 없었다. 추워진 날씨에 집 안에서 꼼짝 않고 생활했던지라 가능한 결과였다. 오히려 격리기간 동안 더 늘어지게 누워있을 수 있어 입사 이래 최고의 호사를 누렸다. 느즈막이 눈을 떠 침구에서 휴대폰을 하는 게 지루해지면 이따금씩 소소한 집안일에 금방 피로해져서 다시 눕기를 반복했다. 구호물품에 쓱배송, 음식배달로 입맛까지 챙긴 건 덤이다.


자가격리와 함께 끝난 휴일

2차 PCR 검사가 음성으로 나와 6일의 기간 내에 격리를 끝낼 수 있었다. 그 안에는 배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어 탈출할 뻔 했던 가장 큰 위기가 있었으나, 양성일지 모르는 혹시가 끝까지 발목을 잡아 끝내 감행하진 못했다. 누구보다 자가격리를 달게 보냈지만 자유를 찾아 격리해제를 기다렸던 건 사실이다. 격리해제 시점인 12시에 맞춰 외출 준비를 마치고 가장 먼저 어디를 갈지 떠올렸다. 아이스크림 가게, 카페, 편집숍 등 수많은 선택지 중 내가 택한 건, 다름 아닌 길이다.



두 눈에 현란히 펼쳐지는 한라산과 짙푸른 바다를 만나는 길. 가장 그리웠던 건 가장 가까이에 있어도 닿을 수 없는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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