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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박은경 Jan 04. 2024

얼룩 지워주는 사람


함께 살던 얼룩을 지웠다! 이사 오면서 있었던 것, 처음엔 그런가 보다 하다가 볼 때마다 화가 나던 것. 공사를 할까, 이사를 갈까 고민하던 것. 무엇으로 해도 지워지지 않던 것. 그것을 지우고 얼마나 기분이 좋던지 여기저기 자랑했다. 하고 보니 부끄러웠다. 남의 얼룩이라고 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흘렀다. 무지하고 게으른 나.      


아기 발바닥이며 팔꿈치처럼 희고 맑던 장소마다 얼룩이 태어난다. 처음엔 작은 점처럼 거의 보이지 않지만 그 점을 중심으로 이것저것 지글지글 모여들었겠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하는 것처럼 돌아보면 한 점, 또 한 점 늘어났겠지. 조금씩 자라 확연한 오점이 되었겠지. 얼룩을 지우려면 그것에 대해 알아야 한다. 왜 생겼는지, 무슨 얼룩인지 모르는 채 지울 수는 없다. 모든 수고가 성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무딘 칼로 난도질을 하듯 물성만 망가뜨릴 뿐.      

나의 얼룩에 대해 생각한다. 크고 작은 얼룩들, 숨어 있는 얼룩들. 주머니 속의 날카로운 물건처럼 자꾸 들키게 되는 얼룩들. 그것을 다 지울 수는 없을 것 같다. 어떤 얼룩은 끝까지 최선을 다해서 숨겨야 하겠지만(!) 가능한 드러내야 할 것 같다. 멀쩡해 보이는데 심하게 망가진 부위에 아름다운 패치워크를 해주던 엄마처럼 얼룩을 중심으로 아니 기준으로 아니 수평계 삼아 조금이라도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    

  

부업으로 얼룩 지워주는 사람을 하면 어떨까. 흥미진진하고 보람될 것 같다. 어떤 얼룩을 지워드릴까요, 공고를 내고 찾아가서 상담하는 거다. 얼룩의 근원을 진단하고 적합한 작업을 통해 원래 모습으로 돌려드립니다, 얼룩이 어디 있었더라, 찾을 수 없을 만치 완벽한 작업을 해드립니다. 장소는 마음일 수도 있고…


p.s. 한 번의 성공에 진하게 취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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