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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박은경 Jan 09. 2024

편집장님 괴롭히기


투고하고 답신 메일을 받을 때면 무념무상이 되려고 합니다. 실눈을 뜨고 중간 부분을 봅니다. 거절이군요. 투고가 출판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전화가 오거나 빛나는 짧은 답신입니다.


거절의 메일은 다음의 삼단계입니다. 1 투고 고맙소. 2 낼 수 없겠소. 3 다음 기회에. 이러한 뼈대 위에 다정하게 혹은 무정하게 답변을 해주지요. 거의 될 수도 있었다는 듯이 희망을 주는 경우도 있지만, 잘 좀 쓰라는 뉘앙스도 있습니다. 그런 날은 씁쓸합니다. 재능도 없이 인생을 탕진하는구나 싶어서요. 구멍 뚫린 풍선처럼 쪼그라듭니다. 부끄러워서 살기 싫어요.


편집장님은 피로하실 겁니다. 수많은 투고 원고들이 밀려드니까요. 빛나는 한 권을 찾아내기 위해 무수한 아니 거대한 글자 감옥에 갇히니까요. 필시 책이 좋아서 그 직업을 찾았겠으나 좋아하는 책을 읽을 시간은 사라지니까요.


이제 막 등단한 친구들에게 저는 투고를 '청탁받은 원고 내는 듯이 하라'고 말합니다. 그럴 경우 마감시간을 맞추려고 달리게 되고요. 능력 있는 편집장님의 답신을 받을 수 있으니까요. 완성작을 빠르게 늘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투고를 지나치게 한다면 편집장님이 블랙투고자로 변별, 믿고 거르실 수 있어요. (제 상상) 시간을 조금 두고, 발전된 글을 쓰고자 노력하는 쪽이 낫지요. 아니면 다른 원고를 다른 이름으로 투고하는 것이 좋을까요? (말도 안 되지만)


페르난두 페소아의 다른 이름은 확인된 것만 해도 75개를 넘는다지요. 가명이 아니라 이명이라고요. 오늘의 투고에 실패했을 때 우리에게 아니 저에게 필요한 건 이명의 존재처럼 새로운 글을 써야 하는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버스가 옵니다. 저걸 타려고 달리기 시작합니다. 버스는 계속 달리고 있습니다. 아무도 없는 정거장을 그냥 경유하려 합니다. 다음 버스를 탈까 포기하면서도 조금 더 달립니다. 신호에 걸린 차가 가까스로 멈춰 저도 태워 줍니다. 눈이 또 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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