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고하고 답신 메일을 받을 때면 무념무상이 되려고 합니다. 실눈을 뜨고 중간 부분을 봅니다. 거절이군요. 투고가 출판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전화가 오거나 빛나는 짧은 답신입니다.
거절의 메일은 다음의 삼단계입니다. 1 투고 고맙소. 2 낼 수 없겠소. 3 다음 기회에. 이러한 뼈대 위에 다정하게 혹은 무정하게 답변을 해주지요. 거의 될 수도 있었다는 듯이 희망을 주는 경우도 있지만, 잘 좀 쓰라는 뉘앙스도 있습니다. 그런 날은 씁쓸합니다. 재능도 없이 인생을 탕진하는구나 싶어서요. 구멍 뚫린 풍선처럼 쪼그라듭니다. 부끄러워서 살기 싫어요.
편집장님은 피로하실 겁니다. 수많은 투고 원고들이 밀려드니까요. 빛나는 한 권을 찾아내기 위해 무수한 아니 거대한 글자 감옥에 갇히니까요. 필시 책이 좋아서 그 직업을 찾았겠으나 좋아하는 책을 읽을 시간은 사라지니까요.
이제 막 등단한 친구들에게 저는 투고를 '청탁받은 원고 내는 듯이 하라'고 말합니다. 그럴 경우 마감시간을 맞추려고 달리게 되고요. 능력 있는 편집장님의 답신을 받을 수 있으니까요. 완성작을 빠르게 늘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투고를 지나치게 한다면 편집장님이 블랙투고자로 변별, 믿고 거르실 수 있어요. (제 상상) 시간을 조금 두고, 발전된 글을 쓰고자 노력하는 쪽이 낫지요. 아니면 다른 원고를 다른 이름으로 투고하는 것이 좋을까요? (말도 안 되지만)
페르난두 페소아의 다른 이름은 확인된 것만 해도 75개를 넘는다지요. 가명이 아니라 이명이라고요. 오늘의 투고에 실패했을 때 우리에게 아니 저에게 필요한 건 이명의 존재처럼 새로운 글을 써야 하는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버스가 옵니다. 저걸 타려고 달리기 시작합니다. 버스는 계속 달리고 있습니다. 아무도 없는 정거장을 그냥 경유하려 합니다. 다음 버스를 탈까 포기하면서도 조금 더 달립니다. 신호에 걸린 차가 가까스로 멈춰 저도 태워 줍니다. 눈이 또 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