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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박은경 Jan 16. 2024

내가 시인인 걸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


언젠가 아이들이 결혼을 할 때 사돈어른께는 말하지 말아 달라고, 아니 아이들의 파트너에게도 절대 비밀로 해달라고 미리 당부해야지. 시인 엄마, 시인 장모, 시인 시모, 시인 사돈이라니 상상만으로도 등에 식은땀이 나네.


시인은 감정 과잉, 감정 가속, 자기중심적, 자기 사랑과 자기혐오의 도가니, 집요하고 무책임하고 타인에 대한 사랑은 너무 좋거나 싫은 극단화의 경향이 있음.  음풍농월과 허장성세의 버릇. 절제 불능의 다정 혹은 비관. 비현실적인 면모 등등.


만약 아이들의 부모가 혹은 파트너가 시인이라면 제발 그러지 말라고 말리고 싶겠지만 소용없는 노릇. 타인의 삶에 대한 무엇도 폭력이라는 생각에 행동에 옮기지도 못할 것 같다. 다만 상견례 자리에서 그들을 보며 다 알 것 같은 마음과 눈빛으로 측은지심의 마음이 되겠지. 어쩌다가 시를 쓰시게 되었나요. 어쩌다가 이런 불편한 인연이…


하지만 이미 그런 사람과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몽상가인 아내는 피곤하다. 제 안에 갇혀서 주변을 외롭게 한다. 이상한 걸 써서 읽어보라며 내밀기도 하고. 일촉즉발 상태로 빠져 불안하게 한다. 철없는 엄마는 짜증 난다. 시인이면 감성적이라고 위로의 말을 주겠지만 감성이 밥 먹여주나? 밥을 해주나?


시인 스스로는 행복하거나 불행하거나 내적으로는 지복에 근접한 상태일 수도. 하지만 식구들은 무슨 죄란 말인가. 비타협, 비상식, 비현실, 비생산적인 시인 엄마는 이쯤에서 생각한다. 시인의 부정적 기질을 감추기로. 그러면 또 인지부조화에 의한 내적 혼돈이 기다리는데. 이런 소회부터가 감정과잉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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