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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박은경 Jan 16. 2024

나를 왜 사랑해, 이 미친


귀에 대고 속삭인다, 사랑한다고. 언제 봤다고 나를 사랑해, 왜 사랑해, 이 미친, 하며 돌아보니 바로 옆의 한 몸이 된 연인의 이별 장면. 신도림역 오후 22:30 넘어가는 중. 아까부터 애인의 코트 속에 들어가 있던 커플이다. 함께 내릴까, 아니, 실랑이를 하더니 남자 친구가 먼저 하차. 신대방에서 문자 해, 속삭이니 여자 친구는 뽀뽀, 한다. 돌아보지 않았다.


아까는 부고카톡을 보고 있는데 붉은 밍크코트 입으신 분이 앉으신다. 핏빛 레드, 출렁이는 적포도주. 검은 옷을 입고 문상 가는 마음이 비틀거리는데. 그분의 휴대폰 창이 훤히 보였다. 크게 키운 글자들은 줄줄이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나란히 앉은 어르신과 나는 한 다리 건너 누군가의 죽음을 전해 들은 오후였다.


사랑도 좋고 고백도 좋은데 넘치는 이야기들이 힘들다. 얘기하지 마, 홍대 가서 놀자, 네 거 해, 응, 내가 뭐 했지? 네버? 나 지금 힘들어. 엄청 비싼 거 사줬는데 새꼬시 그걸 내가 먹겠냐. 우리 열차는 급행열차로. 가시 있는 걸 내가 먹겠냐. 어쩔 수 없이. 우린 퇴근시간이 정해져 있어서. 너보다 이뻐 안 이뻐. 산 낙지? 진짜? 겁나 이뻐, 존나 안 이뻐. 여수 딸기모찌…

오늘 동창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오래 누워 계셨는데 어제저녁 잘 드시고 오늘 아침 잘 일어나시고 식사를 드시자고 하니 조금 더 주무시겠다고 하시고는 다시 일어나지 않으셨다고. 친구는 조금 울었다고, 그런데 이제 뭘 해야할지 모르겠다고 푸르게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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