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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박은경 Feb 03. 2024

아버지의 아버지는 모른다

아버지 이름은 김가에 광자 원자. 엄마 이름은 박가에 남자 숙자. 그런데 할아버지 이름은 모르겠다. 뵌 적도 없다. 서당 선생님이셨다고 들었다. 전쟁 후에 정신이 흐릿해지신 채로 족보를 불쏘시개로 쓰셨다고. 족보가 활활 타는 장면을 소년 아버지의 두 눈으로 보셨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아버지의 아버지는 전후의 절망적 상황 속에서 족보의 무용함, 존재의 무의미함을 견딜 수 없었던 게 아닐까. 아버지에게는 형이 둘, 누나가 하나, 남동생이 하나였다.      

아버지께 문자로 여쭙는다. 아버지의 아버지, 그러니까 제 친할아버지의 존함은 무엇인가요? 할머니는 알고 있습니다. 서개돌이 맞지요? 아니다. 할머니는 서계돌이시다. (아차, 늘 계수나무 할 때의 ‘계’라고 하셨지) 할아버지는 대외문서에는 익자 환자, 그러니까 더할 익에 빛날 환을 쓰셨고. 원래는 김수세셨다. (목숨 수에 세상 세를 쓰셨을 것 같다)      


엄마의 엄마 아버지는 동사무소에 가면 알 수 있나. 여쭙기에는 너무 멀리 계시니. 외할머니는 작고 마른 몸에 조금 검은 피부, 커다랗고 쌍꺼풀 진 눈에 아주 커다란 손을 갖고 계셨는데. 벽에 기대앉아 한 손으로는 바닥을 짚고 한 손으로는 마른세수를 하시던 모습. 그분의 성함은 무엇이었을까. 엄마의 아버지는 어떤 분이셨을까. 뵌 적도 없고 궁금했던 적이 없고, 들은 바가 없는데. 엄마에게는 남동생이 셋, 여동생이 하나였는데. 한 존재에 대해 아무도 기억하는 자가 없다면 그 사람은 완전히 사라지게 될 텐데.  그렇게 그들은 자유로워지는 것일까.     


사랑하고 미워하는 가족은 우리의 전부다. 무슨 일이 있으면 연락하고 크고 작은 일마다 만나고 걱정하고 기도해 주는 사람들. 그것은 영원할 것만 같은데... 둥글게 돌아가는 힘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형체처럼, 회전력에 의해 느슨한 가장자리의 것들이 떨어져 나가는 것처럼 알 수 있거나 없는 저마다의 연유로 멀어지고 잊히고 남과 다를 바 없는 관계가 되어버린다. 슬프고 속상하고 안쓰럽고 그래도 언젠가 회복될 수 있을 거라 믿고 있지만 영원한 것이 없다는 말에 예외란 없을 것 같아서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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