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쓰는 O는 수시로 자신의 습작을 보내온다. 조각조각, 어느 것의 일부인지는 모르지만 그것을 나는 받아 읽는다. 이거 어때, 이건 어때, 이상한지 어려운지 재밌는지 아님 뭔가 있는 것 같은지 틀린 것은 없는지 부담은 없는지 묻고 또 묻는다. 어떨 때는 같은 습작을 보내오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모르는 척 넘어간다. 미래의 독자가 그리워서, 타인이 그리워서 무엇이건 그 마음 다 알 것만 같아서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눈을 비비며 기꺼이 반갑게 환영한다.
처음에는 내가 O에게 무언가 해주는 것 같았는데 읽다 보니 아니었다. O는 나를 깨어있게 한다. 다른 것에는 한눈팔지 않는 직진의 자세로 쉬지 않고 스스로를 밀어붙이는 열정, 진지하게 자신의 작품 세계를 파 들어가는 뜨거움이 멋있다. 그렇게 살아가기에 그토록 멋진 글을 쓴다는 것을 보고 알고 믿게 되었다. 능력과 열정과 시간이 합체되어 그의 글은 나날이 성장하고 있다. 그런 자세 없이 그런 결과를 만들 수 없으니 어쩌면 좋을까, 자괴감에 빠지기도 한다.
반면 나는 나의 글을 O에게 보여주지 않는다. 쓸 때도 쓰고 나서도 그런 일은 벌이지 않는다. 우연히 찾아 읽고는 감상을 전해주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좌불안석이 되곤 한다. 좋다는 말은 믿지 못하고 좋지 않다는 말을 숨긴 건 아닌가 의심한다. 나를 위해 쓴 글이 타인에게 가 닿지 않는다면 무용하게 느껴지는데. 시위를 벗어난 글은 내 것이 아님을 알고 있고. 나의 의도는 나의 생각일 뿐 감상은 온전히 독자의 몫이라 믿고 있다.
혼자 쓰고 혼자 읽고 혼자 고치고 혼자 발표하고 잊어버리는(잊어버리려 애쓰는) 방식이 좋은지 나쁜지 나는 모른다. 효율적이지 않다는 것은 안다. 다만 이 일이 내 인생의 의미가 된다는 점은 확실하다. 인생의 의미 같은 게 있는지 없는지 있어야 하는지 없어도 되는지 그런 건 잘 모르지만 '살아있다는 느낌'이 내겐 가장 중요하고, 글을 쓸 때 그 감정을 느낀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반복되지 않는 희열을 느낀다. 다른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글을 쓰면 마침표를 찍자마자 갑자기 사는 게 좋아진다. (그런 글과 확신이 잘 오지 않아서 아쉽기는 하지만)
중얼중얼 혼자 속으로 되뇌는 단어들, 문장들, 뭔가 될 것 같아 메모해 두지만 시간이 지난 뒤에 보면 무슨 생각을 한 건지 알 수 없는 것들이 태반이지만. 무언가 되려다가 만 것, 되고 싶었던 것들이 인생의 의미를 향한 부스러기 같아서 그것들을 따라 걸어가야 할 것 같아서 매정하게 쓸어버리지 못하고 손끝으로 찍어 올려 한참을 들여다보기도 하는데. 그 속에 너무 오래 갇혀버릴 때면 창문을 열고 탈탈 털어버려야 한다. 오늘은 입춘, 묵은 것을 내다 버리기 좋은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