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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박은경 Feb 06. 2024

우울할 수도 있지

출근길 전철역 젖은 계단에 떨어진 약봉지를 주웠다. 여보세요, 부르는데 아무도 없다. 약 주인은 재희 씨, 26세. 투명해서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데 우울증 약이었다. 재희 씨는 오늘 괜찮을까. 약을 떨어뜨린 걸까, 먹기 싫어서 버린 걸까, 먹을 필요가 없어진 걸까. 나는 왜 남의 약봉지를 주워 들었나. 왜 살펴보고 있나. 쓰여있는 약 이름을 왜 검색하나. 연민의 마음인가, 연민의 증상은 아닌가. 관음의 마음인가, 관음의 증상은 아닌가. 마음이라고 하면 그럴 수도 있을 것 같고, 증상이라고 하면 병이 아닐까 싶어지는데.


이 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우울한 나라’라는 마크 맨슨의 지적은 사실인가. 우울하다는 말보다는 졸려, 고단해, 힘들어, 지쳤어, 그런 말을 더 흔히 듣는다. 졸리고 고단하고 힘들고 지쳐서 우울할 때도 있겠지만 그런 결론을 내리는 대신, 현재 심신의 상태를 하소연하는 정도로 마음을 다잡는 것이다. 무인판매하는 꿀떡을 사서 주머니에 넣고 가는 사람, 타원형 연노랑색 카스텔라를 조심히 들고 가는 사람, 백팩에는 텀블러나 물병을 꽂고 갈증과 허기를 채우며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다. 그것이 힘든 마음을 이겨내는 방법인지, 악화시키는 방식인지 알 수 없지만. 저마다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게 습관이 되어버린 사람들이다. 그래서 우울해졌다는 건데. 우울할 수도 있지. 우울하면 어쩌지. 우울하면 안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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