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일을 맞아 내 것 대신 아버지 선물을 샀다. 점퍼와 신발. 얇게 패딩 된 경량 점퍼는 올리브색인데 주머니가 세 개, 윗주머니에는 지퍼가 달려있고 옆주머니에는 똑딱단추가 달려있다. 구불구불한 누빔무늬는 경쾌해 보인다. 끝선마다 약한 광택이 도는 바이어스테이프를 돌렸다. 신발은 고민고민하다가 끈으로 묶는 가벼운 것으로 샀다. 검정은 싫어하시니 연회색. 덕분에 쇼핑몰 두 군데를 헤맸다.
설날이 생일이니 그날 저녁식사 모임 때 드려야지. 깜짝 놀라실 거다. 설날이 생일이 되어버린 올해의 우연에 한 번, 막내의 나이에 두 번, 철든 듯한 선물에 세 번.
선물은 아버지 맘에 안 드실 거다. 얇다, 두껍다, 너무 젊다, 색이 별로다, 비싸겠다, 얼마나 입는다고 괜한 짓을 했다 등등. 그리고는 열심히 입으실 거다. 이걸 우리 막내가 사줬단 말이지, 하면서 주머니가 담뱃갑 넣기 딱 좋다 하시겠지. 그 신발을 신으시고 제비꽃 올라오는 봄에는 힘차게 걸으셨음 좋겠는데.
오래전 그날, 달을 못 채우고 급히 태어난 아이, 너무 작아서 불안불안하신 채로도 태어난 시간을 수첩에 적으셨겠지. 언제든 흔들리지 않는 정성스러운 글씨체로 13시 03분. 엄마, 아버지 고맙습니다. 사랑해요. 그리고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