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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박은경 Feb 07. 2024

수의랑 관 구경

장례식장에 가면 수의랑 관 구경한다. 모르는 사람의 죽음일 때, 심부름으로 갔을 때라야 용기를 내보는 일이지만. 대마 수의는 290만 원, 당초무늬 본견(인견) 한복 수의는 87만 원. 둘 다 중국산 원사에 남해 가공, 국내 봉제. 오동나무관은 68만 원부터 비싼 것은 매우 비싼데 전시된 저 관에 누우면 많이 클 것 같다. 몹시 어둡겠지. 답답하겠지. 은은하게 내부 조명이 있으면 좋겠다. 바깥을 구경할 수 있게 작은 창을 달아줬으면 좋겠다. 공기정화장치도 있었으면 좋겠다. 이러고 중얼거리다가 도망치듯 나온다. 마치 남의 일이라는 듯, 멀고 먼 날의 일이라는 듯 믿고 싶어 하는 어리석음이 부끄러워진다.      


18세기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자가 남긴 유서는 다음과 같다. "단추를 잠갔다 푸는 것일 뿐. All the buttoning and unbuttoning." (뉴필로소퍼 vol.3) 이 말을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 살고 죽는 일이 단추를 잠그고 푸는 일처럼 일상 속 단순한 동작이라는 것일까. 하지만 단추를 제대로 잠가야만 세상 속으로 나갈 수 있으니 매우 다르고 중요하다는 뜻일 수도. 생과 사가 옷의 안과 밖처럼 바짝 달라붙어 있다는 뜻일 수도 있고. 단추를 잠그는 일이 생이라 할 때 그것을 가능케 해주는 이는 부모 혹은 신적 존재인 반면, 그것을 푸는 일은 스스로 할 수 있다는 뜻이 되나. 사는 것도 죽는 것도 마음대로 안 된다고 반박한다면 18세기의 고인이 자신은 그렇지 않았다고 재반박하려나.       


그래도 죽음에 대한 관심은 유용하다, 고 믿고 있다. 장례식장 다녀오는 길이면 별도 더 빛나고, 커피도 더 향기롭고, 차가운 바람도 시원하게 와닿고, 말 한마디도 좀 좋게 하게 되고, 알람에 놀라 눈 뜨는 아침이 각별해진다. 삶을 더 소중히 생각할 수 있게 해 주고, 지금 하는 일이 정말 중요한 일인가 생각하게 해 주고, 마지막 날이 언제일지 알 수 없다는 당연한 사실은 순간순간을 잘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다시 하게 한다. 하고 싶은 고백과 해야 하는 정리를 더는 미루지 않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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