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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박은경 Feb 21. 2024

소진되는 하루

흰색, 노란색, 빨간색, 파란색 천을 뒤집어쓴 사람들이 분주히 걸어갑니다, 아니 걸어가기를 반복합니다. 네모난 링, 정중앙엔 검은 스팟이 있어요. 음악은 반복적으로 되풀이됩니다. 사뮤엘 베케트의 단막극 <쿼드(Quad)>를 보고 있어요. 기분이 이상해집니다. 뭔지 모르겠지만 뭔가 알 것도 같은데 확실히는 모르겠습니다.      


들뢰즈는 <소진된 인간>을 통해 이 연극에 대해 말합니다. 소진된 인간은 피로한 인간을 넘어선다고요. ‘피로’는 더 이상 무언가를 실현할 수 없는 무력한 상태라서 가능성은 남은 상태임에 반해, ‘소진’은 더 이상 아무것도 가능하지 않은 상태라고요. 피로한 인간은 눕거나 기대어 선 채 충분히 휴식을 취할 수 있음에 반해, 소진한 인간은 책상 위에 머리를 푹 숙여 기댄 채 앉아있는 자세를 취하고 있기 때문에 회복될 수 없다고요. 피곤은 something에 의한 것임에 반해, 소진은 nothing에 의한 것이라고요. 들뢰즈에게 있어서의 소진이란 부정적 의미가 아니라 ‘생명 자체의 순수한 발생적 역량이 함축된 개념’이 됩니다.


베케트의 단막극은 우리의 일상과 겹쳐집니다. 무용한 걸음, 분주한 동작, 되풀이되는 일상이 화면 속의 작은 무대 같습니다. 정작 중요한 것, 가장 중앙에 있는 핵심만은 모르는 채 안 보이는 채 피해가고 있습니다. 그것을 저는 질문이라고 이해합니다. 이렇게 걸어야 하는 이유, 이 무대에 오르게 된 이유, 이 극이 끝날 수 없는 이유요. 그 질문의 답은(아마도) 없지만 기억하고 있어야만 합니다. 배우들은 퇴장하고 짧은 극은 끝나지만 우리는 그 무대를 계속 바라보고 있습니다. 배우들 또한 무대 뒤편에서 새로운 지평을 향해 나아가겠지요. 가능성이 소진된 후에도 지속하기를 멈추지 않는 우리들에게 순정한 잠재성이 주어져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Samuel Beckett, <Quad>. Andy Suttie 유튜브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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