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박은경 Feb 27. 2024

백화점에서 명상하기

다리도 아프고 배도 부르고 식곤의 증상이 몰려올 때면 자리를 잡고 앉아 눈을 감아보세요. 들어찬 사람들이 사라지고 수많은 물건들이 사라지고 수많은 소리와 향기와 아른거리는 빛 같은 것들이 차오릅니다. 방금 전까지 북적대던 이곳은 까무룩 하게 멀어집니다. 숨을 들이쉬고 내쉬고 들이쉬고 내쉬고 그러다가 슬그머니 졸아도 좋습니다. 의자 등받이는 나를 밀어주는 듯도 하고 받쳐주는 듯도 하고, 두 다리는 바닥에 닿아 깊이 내려갑니다. 백화점 아래층의 아래층을 지나 지하 주차장을 지나 무진한 시간의 지층을 지나 어느 나무뿌리 돌조각 물길의 흔적을 지나도록 깊이 내려갑니다. 입에서는 인도 카레의 맛, 혹은 브라질 커피의 맛, 혹은 터키 아이스크림의 맛, 혹은 스위스 초콜릿의 맛 같은 것이 여운처럼 남아 있겠지요. 그러다가 눈을 뜨면 시야는 환해지고 소리는 살아납니다. 피로는 조금 사라졌고 시간도 조금 사라졌고 돈도 사라졌고..      


사람들은 여기저기서 사진을 찍고 구경을 하고 뭔가를 사고 먹습니다. 기둥 없이 사방이 훤히 보이는 이곳에서는 사람 구경이 제일 재밌습니다. 세상에 저런 음식도 있구나 감탄도 합니다. 아직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음식들이 있어서 즐거워집니다. 아직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미지의 세계를 상상하는 일도 즐겁습니다. 입장이 제한되는 명품관을 외면하며 걷는 기분도 나쁘지 않습니다. 보통 백화점에서는 창문과 시계를 볼 수 없는데 금기를 깬 이곳의 구조가 신기합니다. 하늘 정원은 신화 속의 공간처럼 보입니다. 물론 자세히 보면 얕은 흙무더기에 간신히 뿌리를 내리고 선 나무들이 아슬아슬하지만 정원사들이 정성스러이 보살핍니다. 긴 탐침을 꽂아 뿌리가 마르지 않았는지 살피고 시든 이파리도 줄기도 살핍니다. 이곳의 나무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요. 시들고 죽을 일 없이 안전할 것 같기도 하고, 시들 수도 죽을 수도 없어 답답할 것도 같습니다. 불사의 정원을 품고 있는 이곳에서는 아무도 아프지 않고 가난하지 않고 힘들지 않고 바쁘지도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비현실적으로 아름답게 연출된 파사드의 배면에는 쌓여가는 쓰레기와 음식 찌꺼기와 깨진 그릇들과 파트타임 직원들의 한숨과 피로와 졸음 같은 것들이 현실적으로 줄지어 있겠지요. 영화 세트장처럼 비현실이 현실을 받쳐주는 형상이겠지요.                          

매거진의 이전글 직장과 직업과 글쓰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