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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박은경 Feb 25. 2024

직장과 직업과 글쓰기

무릎길이 검은색 타이트스커트에 유행을 타지 않게 생긴 기본형 검정재킷은 새것입니다. 뒤트임 실을 그대로 달고 있어요. 보나 마나 주머니도 막혀 있을 것 같습니다, 새 구두는 주름 하나 없는 합성피로 은은하게 빛납니다. 어쩐지 어색하고 불편해 보입니다. 단정하게 하나로 묶은 머리도, 한 듯 안 한듯한 화장도 두 손을 비비고 헛기침을 하며 수시로 시간을 확인하는 모습도 면접을 보러 가는 사람 같습니다. 불안한지 두 손을 주머니에 넣으려다 역시나 막혀있는 입구에 당황하네요, 가위가 있다면 풀어주고 싶습니다.      


곧 다른 사람처럼 변신하겠지요. 허리를 곧게 어깨는 활짝 펴고, 가벼이 주먹을 쥔 두 손은 무릎 위에 부드럽게 얹고, 시선은 면접관의 미간쯤을 바라보겠지요. 떨리는 다리를 애써 힘주어 감추고 입꼬리는 위로 올리는 스마일의 표정을 짓겠지요. 자신 있게 그러나 겸손하게, 느리지 않게 너무 빠르지도 않게 최선을 다해서 스스로를 광고해야 합니다. 나를 선택하세요, 시켜 주시면 뭐든지 하겠습니다, 아니 잘 해내겠습니다. 순진한 결의가 엿보이는 표정을 짓겠지요.      


평생직장의 개념은 무의미해지고 이제는 직업을 만드는 시대라고들 합니다. 직장인의 89%가 N잡을 경험, 2030 세대보다는 은퇴를 앞둔 50대의 비중이 높다고요. 진입 장벽이 낮은 일로는 배송이 손꼽히는데요. 배송은 운전을 잘해야 할 텐데 그 점이 저는 자신 없습니다. 차만 몰고 나가면 사고를 내서요. 통계자료를 보니 50대는 하루 3.1시간을 N잡에 투자하여 월 105만 원의 수익을 얻고 있다고 하는군요.(2024.02.24. 중앙일보)      


직장과 직업 모두 수익을 창출해야 하는데요. 그렇다면 글쓰기는 어떤가요. 글이 수익을 창출하기도 하지만 고료의 소박함이야 잘 알려져 있고요. 책을 낸다고 해도 수익구조로는 턱없이 부실하지요. 그렇다면 글쓰기는 직장은 될 수 없고 직업도 되기 어렵고 취미라고 하기도 그렇고 자발적인 벽(癖)이면서 빠져드는 살(煞) 같은 것이 아닐까요. 물론 면접을 볼 일도 없고 정장을 갖춰 입을 일도 없고 운전을 할 필요도 없다는 장점이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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