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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박은경 Mar 06. 2024

상처를 감각하지 못할 때 생기는 일

김영하의 <오래 준비해온 대답>에는 ‘지중해에서는 겨울을 같이 난 사람들만 친구로 생각한다’는 대목이 있습니다. 겨울이 되어 여행객들의 발길은 끊어진 채 추위를 함께 견디며 진짜 친구가 된다고요. 인생의 겨울은 언제일까요. 그 계절이 반드시 와야 하나요. 혹독한 계절을 체감하지 못하고 무덤덤하게 통과하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요. 추위도 더위도 타지 않는 강력한 인간도 있는 것 같아서요. 저는 둘 다 아니 사계절 다 타는 것 같습니다만...   

   

드라마 <재벌×형사>에서는 ‘큰일을 겪은 사람은 가까이하지 마. 언젠간 깨지고 터진다.’는 대사가 나옵니다. 인생의 큰일은 얼마나 큰 일을 말하나요. 저마다의 큰일은 반드시 겪지 않던가요. 이것 역시 담담하게 이겨내는 사람도 있고 요란스럽게 힘겨워하는 사람이 있는 것 아닐까요. 게다가 언젠가 깨지고 터지는 일은 필연이라는 의미이니 빨리 깨지고 터져서 함께 돌아보는 과정이 꼭 필요한 것 아닐까요. 얼마나 가까이하고 싶은가에 따라 달라지겠지만요.      


무덤덤하게, 담담하게 견디고 겪어낼 수 있는 인간의 유형이 따로 있을까요. 하도 많이 맞아서 맞는 것에 이골이 나기도 하고. 하도 미움을 받아서 미움받기 전에 미워해버리기도 하고. 하도 굶어서 굶는 것에 익숙해지기도 하고. 하도 떨어져서 떨어질 거라고 미리 확신하기도 하고. 감탄고토(甘呑苦吐)라서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게 아니라 감탄고탄, 달면 삼키고 써도 삼키는 인간이 되어가는 것은 아닐까요. 그래서 인생의 껍데기가 날로 두터워져서 웬만해선 깨지지도 터지지도 않는 것은 아닐까요. 그렇게 속으로 나날이 곪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상처를 강력하게 두드리는 사건이나 존재가 그래서 너무나 필요해진 상황은 아닐까요. 상처를 감각하지 못하는 것만큼 무서운 일은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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