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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박은경 Mar 07. 2024

춤을 멈추고 쉬는 밤

소설가 친구는 하루 종일 쓴 글을 보여줍니다. 아름다워서 부러웠어요. 하루 종일 쓰는 글은 이런 것이구나, 하는 확인도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속전속결로 써온 나의 글은 무엇이란 말인가, 반성하는 스텝이지요. 깊은 글을 파내려 가는 사람도 있는데 나는 쓰는 기분만 내고 있구나, 자괴감도 들고요. 거대한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글을 쓰는 사람도 있는데 나는 그저 깨춤을 추고 있구나, 한숨이 나옵니다.    

  

그러다가 깨춤이라는 말이 귀여워서 옆길로 샙니다. 깨춤이라니 아마도 깨를 볶을 때 튀는 모습에서 나온 말일 텐데요. 그렇게 따지자면 팝콘춤도 있고 쥐포춤도 있고 오징어춤도 있고 산낙지춤도 있고, 하면서 끝도 없이 이어지다가 아, 모든 것은 춤을 추는구나, 하는 결론 비슷한 곳에 당도하게 됩니다. 깨는 깨춤을 출 수밖에 없습니다,라고 말하면 깨도 자괴감이 들 겁니다. 깨는 깨춤을 추어야 합니다,라고 말하면 깨도 사명감을 느끼지 않겠어요.      


전철에서 만나는 ‘발빠짐’ 문구를 보면 슬며시 웃음이 나옵니다. 정신빠짐, 머리빠짐, 살빠짐, 배꼽빠짐, 이빠짐 같은 말들이 줄줄이 이어지면서 혼빠짐까지 갔다가 웃음은 이내 사그라듭니다. 다들 졸지만 누군가는 화장을 하고, 누군가는 팔을 주무릅니다. 아픈 곳을 주무르는 것이겠지요. 주무르고 있는 손의 엄지는 의수입니다. 제 눈길을 느끼셨는지 엄지를 감추십니다. 얼른 다른 곳을 바라봅니다.      


인간은 손으로 주무르고 동물은 혀로 핥습니다. 식물은 그저 가만히 있을까요. 성한 가지로 아픈 가지를 어루만지고 있을까요. 고래들은 상처를 어떻게 쓰다듬을까요. 물속에서 그들만의 언어로 괜찮니, 어쩌니, 걱정을 나누고 있을까요. 오늘 하루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각자의 춤을 멈추고 쉬는 밤, 덜 아픈 사람이 더 아픈 사람을 안아주는 밤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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