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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박은경 Mar 11. 2024

아녜스 너의 이름은

제주에서 올라온 너는 단단한 아름다움으로 빛이 났어. 과 대표가 되었고 모두의 호응에 부응하여 과팅을 모아 왔지. 다들 우르르 미팅을 하고 헛되이 돌아왔는데 너는 주선한 과대와 커플이 되어 사랑을 하더니 결혼까지 했지. 우리 과엔 은경이 셋, 너와 나와 또 한 사람의 은경이 있었다.


대학 졸업하고 보았던가? 내 결혼식에 왔었던 것도 같고. 어린아이를 데리고 왔던  어린 엄마가 너였던 것도 같고. 이후 두 딸과 신랑과 대전에서 살며 ㅇㅇ 상담소 소장으로 일한다는 이야기도 들었어.


3월 8일 금요일 오후 네 시, 너의 최근 소식도 들었어. 실은 그 전날 새벽꿈에 너를 보았다. 갑자기 왜 꿈으로 왔나 문자라도 보내볼까 했는데 연락처가 사라졌더라. 물어물어 찾을 수는 있겠으나 딱히 나눌 이야기도 뻔한 듯하여 잊어버렸다. 그런 너의 사인은 외출혈, 쓰러지고 이 주일, 눈을 감은 너의 세례명은 아녜스.


그때 나는 막 나온 햄버거를 열고 있었어. 패티도 괜찮고 야채도 풍성하고 요철을 깊게 낸 감자도 따뜻했는데 네 소식에 놀라고 기도하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도우는 소스에 젖어 눅눅하고 납작해졌더라. 비싸고 맛없는 햄버거를 씹는 내내 창밖의 바람은 오색 리본의 머리채를 흩어 뜨리고 햇살은 그 사이로 맹렬히 파고들었어.


이상한 슬픔 속에 있다. 아녜스 너 말고도 작년 재작년에 동창들 셋이나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니. 죽어도 될 정도로 충분히 살았던 삶이라는 게 어디 있겠어. 다들 자신의 자리에서 분주히 사느라 뜸해지고 소식도 모르는 채 살았는데. 모르는 채 사라지는 친구들이라니. 아녜스, 너의 이름은 은경, 그래서 이 마음이 더 이상한가. 홀로 떠나는 슬픔을 지나 부디 평온에 이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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