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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박은경 Mar 14. 2024

모호한 구원과 기쁨의 글쓰기

김보희는 <첫책 만드는 법>에서 독자에게 확실한 각성을 줍니다. 책을 내고 싶어 하는 사람들, 이제 막 첫 책이 나온 사람들에게 하는 말입니다. ‘책이 출간되어도 아무 일도 생기지 않는다’는 진실이지요. 세상은 그대로일 것이라고요. (정말로 그렇더라고요.) 줄줄이 직언이 이어집니다. 그 책은 베스트셀러가 될 수 없다. 그러니 출간에 의의를 두자. 당신은 김영하가 아니다. 판매지수에 일희일비하지 않아도 된다.... 위로는 '책으로 인해 새로운 기회들이 생기기 시작할 것'이라고 말하는데요. 저로서는 이 기회라는 것조차 부정확한 말 같습니다. '글을 쓴다'와 '책을 낸다'는 말이 연장선상에 있다고 확대 해석할 때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단 한 가지의 일은 쓰지 않을 때에 비해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게 해 준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그래서 씁니다, 쓰고 싶습니다.

  

첫 책이 인쇄되고 택배 박스가 도착하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침이 마르고 무섭고 떨리고 기쁘고 눈물이 날 것 같은 상태가 됩니다. 당장 다음 날부터 엄청난 변화가 생길 것 같지요. 식구들에게 보내고 가까운 친구들에게 보내고 무슨 답장을 주는지 목이 빠져라 기다립니다. 잘 받았다, 잘 읽었다, 정도는 매우 예의 바른 경우입니다.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왜 이렇게 어려운 글을 썼나, 왜 무서운 생각을 하나로 이어지기도 하고요. 배송 사고로 받아보지 못했다는 사람도 속속 등장합니다. 제법 많은 경우는 받았는지 못 받았는지조차 알 수 없는 묵묵부답입니다. 그럴 때 상처받습니다만 자승자박이지요. 누가 글을 쓰라고 했나, 누가 책으로 내라고 했나, 누가 책을 보내달라고 했나.... 읽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읽어라, 소감을 말하라고 다그치는 일은 경배를 촉구하는 어리석은 왕의 놀음입니다. 그렇게 조르면 간신히 (어쩔 수 없이) 좋다고 하겠지요. 그 말을 믿고 싶지만 백 프로 믿지는 못할 겁니다. 독재하는 왕의 두려움처럼 말하지 않는 비난에 촉을 세우며 고뇌의 낮과 밤을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결국 자신 속에 갇혀버리게 됩니다.      


쓰는 일은 스스로를 구원할 뿐입니다. 고통스럽지만 기쁨을 동반합니다. 즐겁지만 고통스럽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닙니다. 어쩌면 약간의 가학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글을 쓰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렇게 책은 모호한 구원의 감정과 기쁨을 던져줍니다. 그것을 받아먹으려고 저는 헉헉 달리며 꼬리를 치며 교성을 지르며 스스로를 괴롭힙니다. 당신도 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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