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박은경 Mar 16. 2024

시인의 유작 노트

박목월 시인의 미발표작 166편이 세상으로 나온 기사를 읽었습니다. (2024.03.12. 국민일보 등) 1978년 3월 24일 돌아가신 후 46년 동안 잠들어있던 시 400편(200편이라는 기사도 있음) 중 엄선한 것이라고요. 그가 남긴 80권의 육필 노트에 남아 있었던 것으로 청록파로 규정된 시인에게 사회 현실을 다룬 작품도, 산문시나 연작시도 포함하고 있다고요. 그의 문학의 품이 훨씬 넓었음을 알려준다고 말합니다. 시인의 아들(박동규 교수)은 ‘미공개 시들은 발표하기 싫어서, 발표하기엔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또는 시집에 어울리지 않아서 뺐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아버지의 생애 전체를 보기 위해서는 이것을 볼 수밖에 없지 않은가 반문합니다. 반가운 기사를 접하고 들뜬 마음을 정리해 봅니다.       


우선 발표할 수 없는 마음과 발표하고 싶은 마음이요. 시인은 유작 노트 속의 작품들에 대해 양가감정을 갖고 있었을 겁니다. 미완성작들이니까요. 시간을 두고 고치(거나 버리)고 싶으셨을 수도 있습니다. 시를 보게 될 독자의 입장으로서는 무조건 기쁘고 반가운 일이겠으나 스스로는 원하지 않으셨을 것도 같고요. 장남은 아버지가 하늘서 ‘뭐하러 했노’하실 것 같다 하셨는데요. '뭐하러 했노. 내가 이런 시를 썼군. 애 많이 썼다'고 환히 웃으실 것 같습니다.      


1939년 등단 전의 노트에는 하나의 시를 고친 과정이 고스란히 남아 창작 과정의 내면 흐름을 볼 수 있고, 단어나 행을 바꾸는데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지 볼 수 있다는 기사도 있는데요. 이건 당연한 이야기 같습니다. 심혈을 기울이지 않는 작가가 어디 있어요? 자판의 시대, 녹음의 시대가 되어 쉽게 고치고 지우고 버리고 다시 복원하면서 심혈을 기울이는 과정은 되풀이되고 있는 걸요. 다만 큰 산 같은 선생님의 글쓰기도 고뇌의 과정을 통과했다는 사실이 위로와 희망을 줍니다. 손으로 쓰고 고치던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오래 머리로 마음으로 궁굴렸을 테니 완성태에 가까웠을 것 같고요.      


유작 노트가 80권, 그것이 사라지지 않았다니 놀랍습니다. 시인의 아내가 그 일을 해주셨어요. 남편이 습작하다 쓰레기통에 버린 메모까지 허투루 버리지 않았다고요. 전쟁 때는 천장 위에 숨겨두었고 이후 장롱 밑에 모기장 밑에 보자기로 싸서 쟁여놓았던 것이랍니다. 그렇다면 새로 발굴된 시의 진정한 저자는 박목월 선생님과 아내 유익순 여사 두 분 아닐까요.      


2024.03.12. 한국일보. 박목월 시인과 부인 유익순 여사의 생전 모습

사진 속 두 분이 계신 공간은 거실 같습니다. 작고 둥근 소반과 한복을 입은 인형과 등 뒤의 아름다운 찻잔 세트와 유리잔들이 보입니다. 손님이 오시면 저 찻잔에 커피를 타서 내오셨겠어요. 원고지를 앞에 두고 글을 쓰실 때도 저 커피잔과 함께하셨을 것 같습니다. 인터뷰를 마친 기자가 사진 촬영을 부탁드렸겠지요. 아내 분은 싫다 하시다가 마지못해 한복으로 갈아입고 나오셨을까요. 겨울 한복 옷고름에 접어 보관하던 주름이 고스란합니다. 짧은 단발머리, 깊은 볼우물, 선한 눈매와 아련한 미소까지 아름답습니다. 사진기자는 포즈를 요청했겠지요. 박 선생님은 의자에 앉으시고 사모님은 책 끄트머리를 손끝으로 살짝 잡고 다른 손은 선생님의 등 뒤 의자에 얹어 보세요. 좋습니다. 서로 마주 보며 웃어 보세요. 아주 좋습니다, 찰칵!        


매거진의 이전글 모호한 구원과 기쁨의 글쓰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