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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박은경 Mar 18. 2024

순간을 살기

김연수의 <이토록 평범한 미래>에서 가장 아름다운 대목은 소설 속 소설의 이야기입니다. 기차 안에서 그가 읽던 소설에는 동반자살을 했다가 미래에서 과거로 진행되는 인생을 한번 더 살아가게 된 연인이 등장하는데요. 그들은 시간을 계속 거슬러 올라가면 자신들이 처음 만나는 순간이 찾아오리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 순간이 언제이고 그때 그 마음이 얼마나 설레고 기뻤는지를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지요. 그렇게 두 번째 삶에서는 거꾸로 그 만남을 향해 살아가면서 그 만남으로 인해 일어난 일들을 먼저 경험합니다. 둘은 미래, 그러니까 원래대로라면 과거를 적극적으로 상상할 수 있어요. 둘은 가장 좋은 게 가장 나중에 온다고 상상하는 일이 현재를 어떻게 바꿔놓는지 알게 된다는 거죠. 그들에게는 희망이 생깁니다. 한번 더 살 수 있기를, 다시 둘이 만났을 때부터 시작해서 원래대로 시간이 흐르기를, 그리하여 시간의 끝에,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순간에 이르렀을 때 이번에는 가장 좋은 미래를 상상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요. 그렇게 시간은 거꾸로 흘러 두 사람이 처음 만났던 마지막 순간에 이르고 그들은 그 순간을 한번 더 경험합니다. 그리고 놀라지요. 이토록 놀랍고 설레며 기쁜 마음으로 우리는 만났던 것인가, 그 사실을 깨닫지 마자 그들은 오랜 잠에서 번쩍 눈을 뜬 것처럼 서로를 바라봅니다. 처음 서로를 마주 봤을 때와 마찬가지로요. 그리고 시간은 다시 원래대로 흐르고, 이제 세 번째 삶이 시작된다고요.


처음엔 환희를 느꼈습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지금 이 순간에 이르러 퇴색된 감정들이, 가난해진 인연들이 다시 살아날 것 같아서요. 늙어 죽은 나무가 다시 푸르게 물이 오르고 거친 등껍질이 벗겨져 어린 수피로 갈아입는 신생의 감동을 예감하면서요. 그런데 몇 번이고 읽으며 알 수 없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슬프고 아픈 것들이 기쁘고 좋은 것으로 회귀할 수 있다면 그 반대도 가능해질 것 같아서요. 빛나던 처음에 시들어버릴 미래를 감지하며 피어나기도 전에 죽어버리는 일들은 없을까 싶어서요. 어쩌면 몇 번이고 회귀하고 방향을 바꿔가면서 간절한 바람들과 안타까운 심정들의 어지러운 촉수가 말끔히 정리되는 수순이 예정된 것은 아닐까요. 그러니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다는 서툰 결론에 이릅니다. 그저 바라보고 받아들이며 흐름에 몸을 싣고 흘러가자고요. 하지만 그런 삶은 절정도 없이 심심할 것 같아 또 서운합니다. 방편이라면 시작할 때는 끝을 에둘러 짐작하지 말고, 끝날 때는 공연히 시초의 빛남을 기억해내지 않는 것일까요. 순간에만 살아있자고, 순간이라도 진실로 살아있자고 다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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