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박은경 Mar 19. 2024

얼마나 솔직해질 수 있는가

스필버그는 자신의 영화 <파멜만스>에서 유년 시절의 이야기를 털어놓습니다. 진실을 말하기까지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고 자신도 일흔을 넘기는 나이가 되도록 기다려야 했을 겁니다. 어머니의 불륜에 대한 이야기니까요. 그래도 그 과정을 통해 치유받았을 것 같습니다.


<바다의 숲>이라는 책은 다큐멘터리 <나의 문어 선생님>으로도 유명한데요. 저자 중 한 사람인 로스 프릴링크의 이야기를 읽으며 고백하는 글쓰기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그가 여덟 살 때 엄마와 누나와 함께 아버지 요트에 갔다가 그의 불륜을 마주하고, 아버지는 떠납니다. 전혀 만나지 못하다가 아버지가 된 후에야 만난 그에게 묻습니다. 왜 나를 버렸는가, 하고요. 그 과정을 겪으면서, 그 과정을 글로 쓰면서 그는 치유받았을 겁니다.  


작가가 탄생하면 그 가문은 망한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비밀을 큰 소리로 외치는 자가 작가니까요. 자신의 비밀만 말하는 게 아니라 온 가족과 친척과 친구와 지인들과 이웃사촌의 비밀까지 글감이 된다 하면 거침없으니까요. 그 과정에서 스스로에게 묻게 됩니다. 얼마나 솔직할 수 있는가, 그래서 상처받을 자는 없는가. 백 프로 솔직할 수도 있지만 그래서 상처받는 사람이 생긴다면 그 글은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솔직함과 무례함은 근거리에 있으니까요. 그래서 조금씩 보호막을 씌웁니다. 내 이야기를 친구 이야기인 척하고, 이니셜을 바꾸고 상황을 바꾸면서 인간 존엄을 지키기 위해 보정작업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아니 에르노는 자신이 겪지 않은 것은 쓰지 않는다지요. <단순한 열정>, <집착>, <부끄러움> 등의 책을 읽을 때 제 감정은 좋다가 싫다가 이상하다가 슬퍼지는 뒤죽박죽의 상태에 이릅니다. 트레이시 에민의 설치작품 <My Bed>는 자신의 비밀과 상처와 수치와 슬픔을 고스란히 전시합니다. 내팽개친 속옷과 술병과 콘돔 등으로 더럽혀진 침대를 그대로 갖고 오는 방식인데요. 그의 작품 역시 보고 싶고 보기 싫고 이상하다가 슬퍼지는 뒤죽박죽의 감상을 불러옵니다.      


아무도 상처받지 않게 한다는 배려가 사실 스스로를 보호하고 방어하려는 비겁한 마음은 아닐까요. 상처받지 않으려는 마음이 또 다른 상처를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치유는 가벼워지는 것, 얼마나 가벼워질 수 있는가는 선택적 용기일 텐데요.

2018.07.27 Indiepost 캡처
매거진의 이전글 순간을 살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