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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박은경 Mar 20. 2024

어린 시인들

지하에 있는 마트를 걸어 올라오던 아이가 말합니다. “엄마. 방금  저 위에 노란 파이프 같은 거 있잖아. 거기 붙은 먼지가 꼭 아빠 수염 같더라.” 엄마는 그러냐고, 무심히 대답합니다. 무슨 소린가 싶어 돌아보니 거기 정말, 밤이 깊어가며 턱밑으로 푸르게 올라오는 수염을 한 사람이 보이는 것 같았어요. 그런 것을 알아차리다니 저는 그 계단을 수없이 오르내렸음에도 한 번도 그런 생각을 못했는데요. 그 아이 눈빛이 얼마나 빛날까 궁금했지만 이미 멀어졌더군요.      

어렸을 때도 글을 쓰셨나요? 어떤 글을 쓰셨어요? 일기, 독후감, 무슨무슨 날을 기념하는 글쓰기, 동시 같은 것들이었겠지요. 기억하는 제 첫 글은 동시였습니다. 낙화암에 대해 알게 된 후 삼천 궁녀를 주인공으로 하는 시였어요. 식구들의 도움을 받아도 좋으니 글도 그림도 멋있게 해오라는 과제였는데 단박에 큰오빠가 떠올랐습니다. 오빠가 절벽 위로 휘날리는 분홍 꽃잎을 그려주고, 그 옆에 제 글도 멋지게 써주어서 선생님 칭찬을 잔뜩 듣고는 교실 뒤에 떡하니 붙어 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자랑스러워서 교실 뒤를 어슬렁어슬렁, 수업 중에도 뒤를 돌아보고 싶었고, 거기 걸린 나의 작품을 식구들에게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전시가 끝난 후 동그랗게 말아서 집으로 가져왔지요.


다시 초등학생으로 돌아간다면, 키가 작아 땅콩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병약한 여자아이로 돌아간다면, 겁이 많고 외로움을 타던 아이로 돌아간다면 글을 많이 쓰고 싶어요. 듣고 보는 많은 것들이 처음의 것들이니 쓸 이야기가 정말 많을 것 같습니다. 그때의 나라면, 미래의 나라면 무슨 생각을 할까, 생각하는 오늘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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