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트릭 스톡스(디킨대학교 철학과 조교수)는 "인생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갈 때, 우리는 지금까지의 자기 자신을 잃어버렸다고 느낀다."라고 말합니다. 저는 하루가 조금 다르게 시작하기만 해도 불안해지더라고요. 오늘은 평소보다 십 분 정도 늦었습니다. 간신히 선크림과 눈썹만 그리고 뛰어나왔어요. 루주는 정류장에서 바르는 기분만 냅니다. 늦지 않게 출근할 수 있을까요.
루틴은 우리를 지탱하게 해 줍니다. 늘 하는 일들이 미래의 나 또한 과거의 나와 다르지 않을 것이라 믿게 합니다. 같은 시간도 루틴의 큰 형태이고요. 지나온 과거라는 게 마땅치 않은 경우에도 되풀이되어야 안도합니다. 차라리 깨뜨리고 지우는 게 나은 상태여도 그렇습니다. 느리게 달리는 것만 같은 버스 바닥으로 작은 빛무리가 일렁거립니다. 춘분이 지나니 이렇게나 밝네요. 아, 늦어서 그럴 수도 있고요. 느린 김에 시집을 펼칩니다.
"기적이라는 건 만년설이 쌓인 미래 같은 것. 그 속에 맥락 없이 존재하는 벼랑은 신의 장난질이지. 무언가 빠르게 사라지는 기분이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손끝에서 분명한 통증이 인다. 애인은 갈증이 나는지 침 마른 소리로 중얼거린다. 그 소리는 허공을 지우는 담배 연기처럼 아스라이 멀어진다. 이제 아사코는 물잔을 건네며 말한다. 일어나. 반세기가 지났어. 애인의 따듯한 손이 아사코의 손을 잡는다." 박은정, <아사코의 거짓말> 중
버스가 텅 비었습니다. 다들 언제 내렸나요. 이 차는 어디로 가고 있나요. 어제로부터 반세기는 지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