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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박은경 Apr 16. 2024

그 사람을 싫어합니다

그 사람을 싫어합니다. 웃는 모습도 걷는 모습도 말투도 취미도 싫어요. 쓰는 책은 물론 싫어요. 까닭을 모르겠어요. 실제로 만나본 일도 없으니 말이죠. 곰곰 분석해 보았습니다. 그러려면 그 작가의 책을 다시 읽어야 합니다.


꾸역꾸역 읽는데 좋아요. 잘 쓰는군요. 그러니 유명하지요. 내가 싫어하는 인간이 글을 잘 쓰는 게 배가 아픈 겁니다. 이것은 필시 금메달리스트를 질투하는 은메달리스트의 감정입니다. 부질없고 어리석은 마음을 좀 혼내줘야겠어요. 그 작가에 비해 한참 부족한데 운 좋게 동메달을 딴 사람이 저라고요. 이 감정은 사실에 가깝습니다. 글 잘 쓰는 분들이 얼마나 많은가요. 그저 쓰고 싶어 하고 가늘게 쓰고 있는 사람이 나라는 것. 이 동메달이야말로 제게 일확천금이네요. 그 작가의 책을 다시 읽고 다시 좋아졌냐고요? 그렇진 않습니다. 하지만 냉정을 되찾고 생각해 보니 그에게는 그의 글이, 나에게는 나의 글이. 그리고 나의 불안과 불만이 있듯 그에게도 그의 거친 돌멩이들이 있겠지요.


비 내리는 봄날의 아침 속을 걷고 있습니다. 새 잎의 빛깔과 제 우산이 닮았네요. 푸르고 가벼워요. 걷다가 라일락이 보이면 미리 천천히 걷습니다. 꽃향기를 맡으려는 코는 분주하군요. 글을 쓸 수 있어서 정말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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