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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박은경 May 02. 2024

색의 화장, 흙의 화장

블러셔 사고 싶습니다. 양 볼이 복사꽃처럼 피어난 모습, 예뻐요. 남의 얼굴의 꽃빛은 참 예쁩니다. 버스 앞에 앉은 분이 오늘의 화장을 시작하셨습니다. 타면서 보았던 정면에서 어떻게 달라질지 기대하고 있습니다.


제가 하는 화장이라곤 눈썹연필과 루주뿐인데 (파데 포함) 2분도 안 걸리는 그 일을 하고 안 하고는 심적인 격차가 있습니다. 안 하고 회사를 가면 세수 안 한 것 같고, 잠옷 입고 나온 것 같고, 전의를 상실한 기분이거든요.


결혼하며 세수하기 전의 얼굴을 보고 보여주는 게 괜찮을까, 했는데 신경 쓸 틈도 없던 기억이 납니다. 화장을 못하니 하나 안 하나 비슷하고, 공들여 화장을 하면 안 하는 게 낫다는 평도 많은 걸 보면 화장을 진짜 못 하는 것 같습니다. 그 사이 욕심이 나서 샤도우라도 바르면 간질간질하고 아이라이너까지 하면 눈가가 아파지는 체질 변화까지 있습니다.


그러니 바보야. 중요한 건 기본 얼굴이야,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그 정도는 아니지 긍정의 위로를 하다가.. 사랑에 빠졌던 인생 구간의 얼굴이 가장 해사한 걸 보니 사랑이야말로 묘약인 것도 같습니다.


A4 반장 조금 넘을 정도의 얼굴 구석구석을 밝히고 어둡게 하고 늘리고 줄이고 붙이고 바르고 밤마다 그걸 다시 원상 복귀하는 노력이라니 돌을 끌어내리는 짓과 다르지 않습니다만 화장 잘하는 사람은 일련의 그 과정이 즐겁기 그지없으니 할 수 있는 것이겠지요. 즐기는 순간 이미 아름다움의 극단을 넘나들 테니 말이죠. 가능한 최상의 얼굴을 만들어내고 잊어버리고 지워진 줄도 모르고 시장을 활보하는 걸음마다 필연의 돌가루들을 흘리겠지요.


앞자리 여성분이 일어섭니다. 화장을 마친 이집트 여인이 떠오르는군요. 눈가에는 벌레 퇴치를 위한 검은 라인이 부각되어 있고요. 반짝반짝 빛나는 얼굴, 복사꽃 빛의 두 빰. 입술의 발색도 탁월합니다. 앞머리의 롤은 컬을 완성 중입니다. 전의 불끈 솟는 얼굴이 아름답습니다. 일미우일미, 신의 은총을 빕니다. 이렇게 우리는 매일 색의 화장을 하다가 끝내는 불의 화장을 하겠지요. 흙의 화장도 좋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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