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거리 신호등을 기다리는데 영어회화 방송이 들립니다. “소 로맨틱!” 공부하시는 분은 노점상 사장님입니다. 여자분이세요. 매대를 뒤덮은 옷은 밀리터리 캐주얼과 스포츠 브랜드 가품입니다. 한 자리 10년도 더 되었으니 동네의 인기와 신뢰를 받으시는 데 성공한 것 같습니다.
소 로맨틱, 그 짧은 문장이 내내 머리를 맴돕니다. 다정한 것, 따스한 것, 관심과 격려와 응원, 용서와 이해와 화해, 그런 것들이 다 로맨틱 아닐까요. 내 점포 하나 없다고 슬퍼하는 대신 이 거리가 다 내 점포다, 하고 생각하실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영어공부는 왜 하시는 걸까요. 동기가 있었을 텐데요. 단골들이 외국인이었을까요. 외국어 하나 둘은 기본인 세상이라서 그런 걸까요. 사장님, 이제 외국어 할 필요가 없게 되었어요. 휴대폰으로 바로 통역이 된다니까요. 이런 말을 하면 사장님은 저를 째려볼 겁니다.
사람의 실제 음성으로 듣는 외국어의 맛이라는 게 있으니까요. 기계음 말고 사람 목소리로 들어야 제맛이니까요. 로맨틱이 로맨틱이 되려면 반드시 사람이 화자가 되어야 합니다. 청자도 마찬가지고요. 혼자서 로맨틱하기란 당최 어려울 것 같습니다.